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공직자는 아마도 2000년 전 로마 속주였던 유대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일 것이다. 예수를 참소했던 건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지만,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재판을 굽게 한 빌라도의 책임은 그가 대야의 물에 손을 씻어도 씻어지지 않았다.
법원이 내란으로 규정한 12·3 비상계엄 선포 상황에서 당시 고위 공직자들의 행동이 줄줄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 뜨거운 법감정이 아니라 피고인의 동기와 행동에 대한 재구성과 증거, 복잡한 법리들이 적용되는 재판에는 이런 불행한 순간에 적극 가담한 행동과 소극적으로 추종한 행동,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어떤 결론이 날지 섣불리 예상하기 어려운 여러 모호함들이 깔려 있다. 앞으로의 판결들도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미국의 법학자 워드 판즈워스는 <법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책에서 법적 사고를 사후적 관점과 사전적 관점으로 구분한다. 전자가 “이미 일어난 불행이나 사건을 되짚어보고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해결할지를 판단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미래를 내다보고 사건에 대한 판단이 앞으로 유사한 상황에 처할 당사자들 … 법이 선언하는 내용에 따라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파급력을 지닐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고는 질문한다: “법원의 판결은 당사자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다른 이들을 위해 규칙을 만드는 것인가?” 2025년 ‘초코파이 절도 사건’에서 1심에서는 유죄, 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될 때 중요한 건 초코파이 한 조각의 가격이 아니었다. 법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연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지난 1년2개월은 민주주의를 대하는 시민들의 ‘유인구조’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언제부턴가 대권을 꿈꾸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시간이라는 의미로 ‘별의 순간’이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민주공화국의 공직자들은 별이 아니다. 차라리 등대여야 한다. 시장주의자의 주장대로 최소한 한낮에는 등대지기가 뭘 하든 사실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둠이 깔리고 폭풍이 몰아칠 때, 등대지기는 좌표를 알리는 불을 밝혀야 한다. 이때 필요한 건 기술적 역량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윤리 역량이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적 권한을 부여받은 이들은 볕 좋은 날 나란히 서서 착공식을 축하하는 것만이 아니라, 역사의 어두운 시기에 각자 불을 밝힐 도덕적·법적 의무가 있다.
사람들은 이해한다. 그들도 개인으로서는 황당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영혼 없는 공직자’라 자조하면서도 자신은 조직의 대리인이자 일부일 뿐이라는 심리적 면죄부는 유혹적이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들은 달라야 한다. 합법성과 지표화된 성과로 공직자가 평가되는 시대라지만 용기와 명예, 희생 같은 가치는 늘 공직의 핵심이었다. 권력 앞에서 용기나 명예가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런 덕목이 결여된 공직자가 바로 빌라도였다.
나아가 판사도 공직자다. 판즈워스에 따르자면 지금 진행되는 일련의 재판들에서도 사후적 관점과 사전적 관점 모두 중요하다. 판결은 개별 행위자의 행동에 대한 판단뿐 아니라 미래의 공직자들과 시민들이 역사의 반복 가능성 앞에서 하게 될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판결은 등대다.
그날에 대한 1심에서 판사는 전 총리에 대해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후속 절차에 가담했다고 보았다. 반면, 아무런 법적 의무도 없는 시민들은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국회 앞에 나와 불을 밝혔다. 전 세계의 민주주의는 어두운 시대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 이 ‘생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만일 2024년 12월3일 밤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미래의 어느 불행한 밤에 비슷한 상황에 놓일 공직자들은 지난 1년의 경험과 앞으로 내려질 판결들을 역사서에서 배우고 ‘그들’과는 다른 선택을 할까? 동시에, 그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국회의사당 앞으로 나갔던 이들은 혹시 올지도 모를 미래의 그 밤에도 과연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불을 밝히는 선택을 할까? 지난 1년은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하라고 가르쳤으며, 앞으로의 판결은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주게 될까?
자의적 권력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공직자들, 심지어 헌법이 보호하는 판사조차 등대를 밝히려면 용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 용기를 시민들이 각자의 불빛들로 먼저 보여주었다. 이들은 이 나라의 공직자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