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인공지능 시대, 계약론적 정의를 넘어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인공지능 시대, 계약론적 정의를 넘어

입력 2026.02.01 19:55

수정 2026.02.01 19:57

펼치기/접기

플라톤의 <국가>에서 글라우콘은 ‘정의’를 인간이 불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체결한 상호 불가침의 합의로 설명한다. 정의는 그 자체로 선택되는 선이 아니라, 최악의 상태를 피하기 위한 차악의 선택이며, 법은 이러한 합의를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에 불과하다. 이 정의관은 홉스, 로크, 루소를 거쳐 우리가 아는 사회계약론으로 이어진다.

사회계약은 정의를 정치 질서의 조건으로 이해하며, 인간 삶의 목적은 정의의 외부에 둔다. 이 점에서 사회계약론은 정의를 목적이 아니라 사회의 전제로 이해하는 이론적 전통이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자연스럽게도 최선의 정의가 추구되는 것은 논의의 핵심이 아니다. 권리를 침해받는 인간은 참해 이전에 보편적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첫째, 우리는 권리를 행사하거나 이를 뒤집어 의무를 행할 때 사회계약에 따른 모종의 정의를 경험하는가. 즉 계약론적 정의는 사회적 효능감이 적실한가. 둘째, 권리·의무 주체로서 인간의 조건은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것인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가 내리는 것이 맞을 수 있다. 다만 부분의 합이 곧 전체로 치환되지는 않는다. 집단지성의 발전적 동력을 믿는다면 반성적 사고와 사회적 평가는 불가피하다. 주지하듯 사회가 분화되고 개인 간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갈등은 더욱 첨예해진다. ‘법은 최소한’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법적 분쟁은 늘어나지만, 사회적 정의가 그만큼 더 잘 구현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과연 법이 더 정교해진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로 이어가보자. 노동으로 수익을 얻는 모두가 자신이 대체될 수 있는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본 작금이다. 실제로 2024년 모 은행의 콜센터 노동자들이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대거 해고되는 사건이 있었다. 반면 해고되지 않은 이는 자신마저 대체할지 모르는 인공지능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업무와 인공지능 상담을 거쳐 자신에게까지 온 진상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고강도 업무를 맡게 됐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 이런 사안은 다른 직종에서도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확장되는 중이다.

요컨대 계약론적 정의는 권리 침해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권리·의무 관계가 고도로 복잡해지면서 모종의 한계를 노정한다.

또한 복잡해진 사회와 기술의 발전은 계약론적 정의관이 전제해 온 인간상과 법의 기능에 질문을 제기하는 중이다. 특히 알고리즘에 의한 채용, 신용평가, 복지 결정, 형사 사법 보조 판단은 계약 위반이나 명시적 권리 침해 없이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삶의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이때 문제는 누가 누구의 권리를 침해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삶의 경로가 제도적, 관행적으로 닫혀버렸는가에 있다. 그러나 계약론적 정의는 주로 사후적 책임 귀속과 침해 판단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의 형성 자체를 문제의 중심에 두는 데 한계를 지닌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의 개념이 필요해진다.

복잡해진 사회 제도와 네트워크, 발전한 기술과 새로운 환경 속에서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질문은 책임의 귀속이 아니라,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는가로의 전환이다. 사회적 정의가 더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침해를 교정하는 최소한의 합의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의는 이제 인간의 삶의 가능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 어떻게 제한되는지를 성찰하는 시대적 과제로 이해돼야 한다.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헌법 10조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결국 이러한 ‘정의’의 토대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기병 한림대의대 내과교수 의료인류학자

이기병 한림대의대 내과교수 의료인류학자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