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센터에는 ‘먼저 떠난 이들에게 전해지는 우체통’이 비치되어 있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가 상담이나 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이들의 사진과 자료를 보며 숨을 고르기도 하고, 추모의 마음을 언제든 전할 수 있게 편지를 쓰며 안부를 나누기도 한다.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찾아오는 공간에 누군가를 추모할 수 있는 우체통을 비치한다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 우체통은 성소수자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띵동 설립의 계기가 되었던 것도 ‘추모’였다. 2003년 청소년 성소수자 ‘육우당’의 죽음이 추모로만 남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설립됐다. 띵동 전화번호 뒷자리 ‘1224’는 센터 오픈 당시 세상을 먼저 떠난 이의 기일을 상징하는 숫자다. 띵동 활동은 곧 차별과 혐오로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찾는 활동과도 연결돼 있다.
지난달 29일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는 변희수재단 법인 설립 안건을 논의했지만, 또다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재상정 결정을 내렸다. 여섯 번째 상정이었지만 같은 결과가 반복됐고 법인 설립을 허가하라는 법원의 조정 권고도 무시됐다.
1년8개월째 법인 설립이 표류하고 있는 사이 인권위는 변희수 하사의 추모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오히려 유가족을 모욕했고,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서까지 노골적으로 법인 설립 자체를 방해해 왔을 뿐이다. 변 하사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던 과거의 인권위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변희수재단은 변 하사가 트랜스젠더로서 겪어야 했던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을 또 다른 트랜스젠더가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모아 출발한 단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의 사회적 지원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다짐은 여전히 ‘법인 설립’에 가로막혀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는 인권위 앞에서 변희수 하사 4주기 추모와 함께 안창호 위원장 퇴진을 위한 집회를 개최하는 등 아직도 온전한 추모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길고 긴 싸움이 끝나는 어느 날, 변희수재단은 트랜스젠더가 편히 찾아 올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고, 그 일부를 변희수 하사를 비롯해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사진과 기록으로 채울 예정이다. 추모가 과거의 슬픈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공간을 찾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2월이 되면 더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목회 활동을 했던 임보라 목사 3주기 추모예배가 2월3일 마석모란공원에서, 변희수 하사 5주기 추모행사가 2월27일 기일 즈음에 서울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다.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이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추모의 마음이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를 수 있게, 그리고 변화를 만드는 씨앗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목소리를 내려 한다. 이들의 모습을 잊지 않고 추모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과거가 아닌 지금,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과제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정민석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