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이 마무리되고 지난해 9월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으로 대거 복귀한 시점에서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이 출범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료진의 모습이다. 성동훈 기자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한 의대 졸업생들은 의사 면허 취득 후에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해 전공의 수련을 시작한다. 2024년 의정갈등 이전에는 의대 졸업생의 90% 이상이 자연스럽게 전공의 수련에 진입했다. 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의 전공의 수련 과정은 한때는 주 100시간 근무 시간을 넘길 정도로 근무강도와 시간이 악명 높았다. 그럼에도 모두가 마치 군대나 성인식처럼 거쳐 가는 과정이라 생각했기에, 이 같은 근로조건이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의정갈등이 다 마무리되고 전공의들이 대거 수련병원으로 복귀한 지난 9월,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이 정식 출범했다. 남기원 수석부위원장(한림대동탄성심병원 신경과 3년차)은 수련 마지막 한해를 남겨둔 상태에서 노조에 합류했다. 지난달 14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남 부위원장은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수련환경을 개선해나가고자 하는 것이 노조의 설립 취지”라며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나 정당한 노동환경을 말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노조는 출범 직후부터 현재 시행 중인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12~1월 두 달간 시범사업 신청 병원 69곳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근무시간, 교육시간 등 노동 환경 조사를 실시해 이중 응답이 온 32곳의 결과를 정리했다. 참여 병원들임에도 여전히 주 70시간에 육박하는 높은 근로시간을 보였고, 폭행·폭언이나 임신부 당직 투입 등 부조리들이 포착됐다.
남 부위원장은 “이번 실태조사에서 근로계약서, 임금 명세서, 복지제도, 시업 사업 준수 여부 등 크게 4가지 항목을 분석했는데, 그걸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중구난방’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남기원 전국전공의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본인 제공
시범사업은 주 72시간 이내 근무 등 ‘근무시간’ 총량 자체를 규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보니 근무의 ‘질’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거나, 오히려 악화된 곳도 있었다. 근무시간은 줄어도, 야간 당직을 하루 걸러 서도록 근무표를 짜는 식이었다. 남 부위원장은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에서 시범사업 신청이 가장 많았는데, 막상 산부인과나 소아과의 경우 새로 들어온 전공의가 아예 없어서 시범사업 자체가 무색한 곳들도 있었다”며 “그런 병원들에서는 ‘전공의가 없어서 시행을 하는지 알 수가 없음’이라는 무의미한 답변이 노조 측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전공의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두고 호소하는 것에 대해서 ‘의사 수를 늘리고, 전공의를 많이 뽑으면 되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수련 시스템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급여나 복지과 좋은 일부 병원과 인기과에는 전공의 지원자가 몰린다. 하지만 지방의 필수과는 전공의는 물론 교수까지 만성적 인력부족에 시달린다.
남 부위원장은 “병원 별로 급여 수준이 두 배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편차가 크다”며 “어떤 병원은 시급이 1만8000원에 육박하기도 하는데, 어떤 병원은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곳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초과 노동도 많은 데다가 병원들이 초과 임금에 대한 계산을 어떻게 하는지도 일하는 사람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는 부분도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달 21일부터 시행되는 전공의법 개정안은 전공의 최장 연속근무 시간을 기존 36시간에서 24시간 이내로 줄이고, 임산부 전공의 보호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이를 위반 시 각 사안별로 500만원의 과태료 처분도 내려진다. 하지만 노조는 근무시간 단축뿐만 아니라 대체인력 확보, 당직 등 업무 구조 개편, 공식적인 교육 시간 확보 등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부위원장은 “단순히 MZ 의사들만 이런 변화를 바라는 것으로 보지는 않으셨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 전 영역에서 부조리에 대해서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참고 넘어가지 않는 분위기가 이미 형성됐고, 주5일제나 52시간 근무제도 그런 흐름 속에서 잘 정착되었지 않느냐”며 “어떻게 보면 의사 집단이 가장 변화가 느린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