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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는 ‘사람’을 떠받칠 수 있을까

입력 2026.02.02 14:42

수정 2026.02.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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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선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선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1990년대 초 신문사에 입사했을 때 (놀라지 마시라!) 원고지에 플러스펜으로 기사를 썼다. 오래 가진 않았다. 이내 CTS(Computer Typesetting System)라는 ‘디지털 혁명(?)’이 시작됐다. 편집국 곳곳에 PC가 설치되고, 선배들은 틈날 때마다 ‘한메타자교사’로 타이핑 연습을 했다. 몇몇 선배들은 끝내 ‘독수리 타법’을 면치 못했다. 피지컬 인공지능(AI) ‘아틀라스’ 논란을 보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변화는 낯설다. 고통스럽다. 펜을 노트북으로 바꾸는 수준의 변화조차 그렇다.

그리스 신화 속 아틀라스는 두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은 자다. 그 아틀라스가 신화 속에서 뛰쳐나왔다. AI라는 머리와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몸을 얻었다. 현대자동차는 2028년부터 미국 공장에 아틀라스를 투입하겠다고 한다. 노동조합은 “노사 합의 없이 단 한 대도 들어올 수 없다”고 반발한다. 보수 성향 매체들은 19세기 영국의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을 소환한다. 기술혁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이다. 관련 기사엔 ‘귀족노조’ ‘집단이기주의’라는 댓글이 달린다.

현대차 노조가 귀족노조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메신저’ 말고 ‘메시지’를 봐야 한다.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 5항은 ‘노동쟁의’의 개념을 정의한다.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에 근로조건의 결정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 등으로 인한 분쟁상태.”

현대차가 미국 공장에 아틀라스를 배치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경우 국내 공장 물량까지 빼갈 가능성이 있다. 이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문제다. 노조는 따지고 요구하고 협상할 권리가 있다. 로봇이 미래를 상징하는 것도, 노조가 과거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달 국제 가전·IT전시회 ‘CES 2026’에서 현대차그룹이 아틀라스를 선보인 후 현대차 주가는 급등했다. 노조 반발이 보도되며 상승세가 꺾였다. 현대차 주주는 물론 주식시장 참가자들의 분노가 뒤따랐다. 그런데 현대차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당신의 일자리는 안전할까?

아틀라스는 현대차 정규직 일자리만 위협하지 않는다. 현대차는 아틀라스 양산 체제를 구축한 뒤 ‘로봇 구독 서비스’를 도입할 것이라고 한다.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유지보수·원격 관리까지 통합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 하청·물류업체를 시작으로 관련 업계 전반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확산될 것이다. 이미 전문·사무직 등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상당수가 AI에 침식된 터다. 현대차 노조는 목소리라도 내보지만, 수많은 중소 사업장 노동자들은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한 채 밀려나고 있다.

AI와 노동의 관계를 연구해온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AI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정도는 과거의 다른 기술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산업 현장의 변화를 함께 논의할 ‘참여적 거버넌스’를 만드는 건 필수적이다. 노동조합, 또 노조가 없는 곳에선 다른 기구가 나서 AI 도입 문제를 공동으로 논의하고, 감시하고, 검증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원론적으로 맞다. 저출생·고령화 시대, 신기술 도입을 통한 생산성 향상은 피하기 어려운 ‘방향’이다. 노동자들이라고 이를 모르겠는가. 하지만 ‘속도’는 다른 문제다. 가파른 비탈길에서 수레가 제동장치 없이 굴러내려온다 치자. 건강하고 날쌘 이들은 몸을 피할 터다. 약하고 느린 이들은 깔려 죽는다. 수레바퀴가 구르는 속도는 조절할 수 있고, 조절해야 마땅하다.

“속도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새로운 차에 앉게 하려면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19세기 영국 섬유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한 것은 단순히 일자리 때문이 아니다. 내버려진 자들의 삶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기업과 정부는 지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고, 그들은 기계를 공격했다”(이상헌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러다이트 운동의 시발점은 ‘삶을, 사람을 구해달라’는 구조신호였다. SOS는 외면당했다. 갈 곳 모르던 분노가 기계로 향한 것이다.

정부 목표대로 AI 3강이 된다 해도 공동체 구성원이 과실을 고루 누리지 못한다면? 외려 불평등은 확대되고 갈등은 깊어질 것이다. 노동의 존엄성을 전제한 대화와 합의, 사회적 투자를 통한 ‘정의로운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다. 국가와 기업은 재교육을 통한 기술 숙련 고도화, 직무 재배치 등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환경영향평가와 유사한 ‘AI 고용·노동 영향평가’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고용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진 청년층을 위한 대책도 절실하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제모을루·사이먼 존슨의 조언은 유효하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광범위한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동적 과정이 아니다. 그렇게 되느냐 아니냐는 사회가 내리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선택’의 결과다”(<권력과 진보>).

우리에겐 선택의 기회가 있다. 아틀라스의 두 어깨에 ‘사람’이 걸렸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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