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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범죄에 대한 판단

입력 2026.02.02 19:49

법치주의 국가의 기초를 구성하는 원칙 중 하나는 사적 제재의 금지와 국가의 형벌권 독점이다. 그런데 국가 자체가 범죄를 하는 경우, 범죄자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해 국가 조직을 범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막강한 공권력을 보유한 국가의 범죄는 사인의 범죄와 국면이 다르다. 사인의 범죄로 피해자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이 남는 경우도 있고 전보다 사회가 덜 안전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개인이 살면서 심각한 범죄 피해를 당할 확률보다는 그러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범죄 문제에서 피해자 탓을 하면 안 되지만, 예컨대 소매치기 같은 잡범의 경우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면 회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국민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다르다. 개인이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억하기도 싫지만 2024년 12월3일 밤에 선포되었던 계엄 포고령 제1호를 다시 살펴보자. 국민이 선출한 대표인 국회의 활동을 금지하는 조치 앞에서, 그 영향을 받지 않는 국민이 있나? 정치적 결사와 집회, 시위는 물론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지하는데, 이런 조치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국민이 있을까? 가장 끔찍한 부분은 이것이다.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여기서 ‘체제전복세력’과 ‘선량한 일반 국민’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자가 구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이런 일은 윤석열의 내란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도 국가 공권력을 가장한 실질적 범죄라는 본질에서 유사하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불법이민자 단속을 명분으로 삼는 이민세관단속국 요원의 행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시민권자 혹은 영주권자라는 증표를 얼굴에 붙이고 다닐 수도 없고 ‘나는 트럼프 찍었다’고 써 붙이고 다녀봐야 소용없다. 피부색을 이유로 단속될 가능성이 물론 높지만, 무고하게 총에 맞아 죽은 시민은 백인이었다. 이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 대한 이란 정부의 대응도 마찬가지다. 군이 무력을 적국이 아니라 자국 국민에게 사용하기로 결심했을 때 수만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피할 길은 없다. 혁명수비대의 총알은 무슬림 신앙이 깊다고 해서 피해가는 것이 아니다.

국가 범죄는 단순히 국민이 범죄의 직접 피해자가 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부정적 영향과 상처는 국가 범죄를 저지른 국가의 국적자라는 이유로 모두가 짊어져야 하고 때로는 몇 세대에 걸쳐 갚아도 모자랄 부채를 남긴다. 한강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과거가 현재를 돕는 것이 아니고, 과거가 현재를 파묻어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독일은 단순히 2차 세계대전 패전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행한 반인도적 국가 범죄의 후과를 지금까지 짊어지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도 제주의 4·3사건, 광주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무력 진압은 사후적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온전히 복구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윤석열이 의도한 대로 계엄이 실행되었다면 한국 국민은 무한정 그 짐을 짊어져야 했을 것이다. 야당 정치인들이 어디인지도 모를 곳으로 끌려가고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겠다며 군이 선관위를 접수하고 정부를 비판한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를 하는 나라에, 젠슨 황이 와서 치맥 회동을 하거나 그 나라의 아이돌 그룹이 세계를 휩쓰는 일이 가능하다고 설마 생각하나?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계엄이 한국의 대외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그렇게 생각한다면 착각”이라 답했다고 한다.

따라서 국가 범죄에 대한 처벌에는 개인 범죄와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계엄의 지속이 짧았다거나 실제 의도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일반 범죄의 경우와 달리 판단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위로부터의 내란’의 위험성의 정도는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적절하다.

국민들은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행위를 단시간에 끝내고 탄핵과 선거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국민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내란 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시작 단계다. 법원은 법의 해석과 적용을 담당하지 적극적인 역할을 맡은 곳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다. 하지만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하고, 법치를 지키기 위해 판결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도 판결문으로 평가할 것이다.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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