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형서점을 거닐었다. 책 진열대와 사람들의 머리 위로 생각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상상을 해보았다. 한편에 놓인 책들은 당신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지, 당신의 일자리와 삶은 괜찮겠는지 끊임없이 물으며 불안을 건드리고, 건너편에선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금융시장으로 들어오라고, 너도 부자가 될 수 있다며 금융시장에서 희망을 찾으라 손짓한다.
불안과 희망은 모두 지금보다는 미래에 관심을 둔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은 불안과 희망 사이를 탁구공처럼 오가며 책을 들춘다. 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라는 손짓은 사실 역사가 꽤 오래된 것이지만 최근에는 한층 유혹적이 되었다. 주식시장 뉴스는 물론이거니와 트럼프 집안이 코인으로 불린 재산이 얼마라는 둥의 소식들도 한몫했다. AI를 필두로 하는 기술혁신의 성과를 누구든 대중 투자자가 되어 누리라는 것이니 이 얼마나 민주적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불안과 희망은 모두 불확실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약간의 환상이 덧씌워져 있다. 이 점에서 이란성 쌍둥이와 비슷하다. 모두가 알듯 기술혁신이 이끌 생산의 변화는 격차를 벌일 가능성이 높고, 금융시장은 이를 증폭시킬 것이다. 기술혁신이 초래할 불평등을 더 많은 사람이 투자자가 됨으로써 이겨낼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만 각자는 뒤처질 것이 두렵고, 예외적인 성공을 거둘 작은 가능성을 갖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본질이자 수익의 원천이다. 기술 변화는 불평등을 넘어 인류 문명의 유지까지 위협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등락을 거듭하는 금융시장은 그 불확실성 자체가 베팅의 대상이다. 대중 투자를 통해 불안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온갖 코인의 가격이 TV 화면에서 점멸하고, 학생들까지 자산 투자에 나서고 있다. 어떤 이론가가 말한 ‘대중 투자자 사회’가 우리 사회에 이렇게 성큼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볼 때, 내게 미래를 전망할 능력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관찰하고 읽고 글을 쓰는 나의 노동을 하며 지금을 살아갈 뿐이다.
현실을 보면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고립되어 기댈 곳이 없어지고 있어 걱정스럽다. 사회적 신뢰나 행복에 관한 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서점 한쪽에서 철학, 문학, 요리와 예술에 관한 책들은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구체적인 생활에서 불안을 이겨낼 기반의 변화 역시 필요하다. 책 한 권을 사보려 해도 제대로 된 생계가 필요하니까. 시장도 네트워크도 삶에 안정성을 주지 못한다면 국가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술 변화 시대의 격차를 언급하며 ‘기본사회’를 말했다. 지난 윤석열 정부의 ‘약자복지’가 취약한 소수를 향한 것이었다면, 기본사회는 지금 사회보장의 제약을 넘어 가능한 한 모두를 위한 것이길 기대해본다. 다수가 불안정한 사회에서 계층 불문하고 사람들은 원자를 닮은 탁구공처럼 불안과 희망 사이를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본사회의 보장이 소득과 돌봄은 물론 건강, 교육, 주거, 교통, 문화, 나아가 노동할 권리, 신기술, 사회적 연결까지 삶의 넓은 영역을 포괄하는 것이길 기대해본다. 이윤을 이유로 이미 많은 이들이 삶에 필수적인 것들을 빠르게 박탈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본사회는 ‘최소한’을 의미하는 기본으로 그 수준을 한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도화된 자본주의에서 사람의 필요를 최소한에 가두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기본사회란 것이 높아지는 생산력 성과를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누는 방식이 될 때 오히려 지속성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누구에게든 삶을 불안 대신 모험으로 채우라 말할 수 있는 괜찮은 기본사회 구상을 볼 수 있게 되길.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