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장 발급 기관이자 연구자 양성 기관이자 대규모 지식 생산 기관의
기능을 억지로 겹쳐놓은 대학들이 지속 가능할까
대부분 대학들은 조만간 존망 위기에 처할 수 있어
이제 이 세 가지 기능을 스스로 풀어놓을 때가 된 것이 아닐까
1876년 대학원만 있는 존스홉킨스대학의 설립은
20세기형 대학의 진화를 촉발한 중요한 계기였다
지금도 그에 맞먹는 혁신이 문 앞에 다가와 있을 것
나는 학계 밖의 사람이므로 대학 문제에 대해 입을 열기가 애매한 위치에 있다. 내부자가 아니므로 함부로 발언하는 게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이해관계가 없으므로 내부자들의 많은 숫자가 공유하고 있지만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대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지랖인 줄 알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 지식 생산 및 유통 그리고 대학의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상황을 빌려 몇 마디 나누어보고자 한다.
오늘날의 대학 제도에는 서로 다른 세 가지 기능이 중첩되어 있다. 첫째는 (학부) 학생들을 교육하고 졸업장을 발부하는 교육 인증의 기능이며, 둘째는 기업은 물론 국가와 사회가 필요에 맞추어 대규모로 지식 정보와 연구 역량을 동원하는 지식 생산의 기능이며, 셋째는 전문 연구자의 훈련 및 양성과 연구 자율성 보장의 기능이다. 이 세 가지 기능은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많이 있으므로 얼핏 보면 불가분의 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보자면 엄연히 서로 다른 시대와 조건에서 생겨난 별개의 기능들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기능을 대학이라는 하나의 제도에서 모두 소화하고 심지어 독점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겨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의 출현이라는 현재의 조건에서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보인다.
서양에서 근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대학이 맡게 된 주요한 기능은 지배 엘리트들을 양성하는 것이었고, 그 주된 교육 내용도 신학과 라틴어, 그리스어 고전을 중심으로 했다. 그 본령의 임무는 새로운 지식의 탐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진리”의 전수일 뿐이었고, 졸업자들이 누린 이들의 상징 권력은 바로 그러한 “진리 전수자”의 후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교적 소수에게만 개방되어 있었던 대학이 대중화된 것은 20세기 들어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화이트칼라 중간 관리직 인력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면서 이들을 양성하는 기능이 대학에 주어지게 되면서였고, 교육의 내용도 전통적인 “교양”과 초보적인 학과 전공이 결합된 형태로 바뀌었다. 20세기 끝 무렵 지식 기반 경제가 출현하면서 대학 졸업장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더욱 커졌으며,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데 도움이 되는 학과로의 쏠림 현상이 극심해지는 일도 나타났다.
한편 연구를 통한 새로운 지식의 생산이라는 기능이 대학에 주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810년대 나폴레옹에게 낭패를 당한 프로이센은 국가 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리와 지식의 탐구”를 본령으로 삼는 훔볼트식 대학을 장려하며, 이러한 새로운 모습의 대학이 다시 미국에서 폭발하던 실험 과학에 대한 관심과 결합되면서 연구 대학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학부가 아예 없고 대학원만 있는 존스홉킨스대학이 문을 열었던 1876년이 그 이정표가 되는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이질적 세 기능의 숱한 갈등
하버드나 예일과 같이 유서 깊은 지배 엘리트 양성의 “교육” 대학들은 이러한 흐름에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였지만 대세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2차 산업혁명으로 대기업들이 자체 연구소를 만드는 등 새로운 지식의 탐구와 연구의 기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학들도 대학원을 강화하면서 연구 대학의 꼴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반면 연구 대학들도 안정된 현금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칼리지를 설립하고 학부생들을 받게 된다. 결국 20세기에 들어오면 두 가지 모델이 하나로 수렴하고 이것이 지배적인 대학의 모델이 된다. 대학은 이제 “연구”와 “교육”을 모두 자기 정체성으로 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합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갈등을 낳은 바 있다. “최고의 연구가 곧 최고의 교육으로 이어진다”든가 “인격의 형성과 지식의 생산은 동일한 과정이다”라는 향기로운 명제들로 대충 얼버무리기에는 두 가지 기능의 간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학부생들 중에도 연구 그 자체에 몰두하는 이들이 물론 있지만, 4년을 보내고 졸업장을 받아나가는 더 많은 숫자의 학생들은 “연구”에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은 좋은 교육과 좋은 추억과 좋은 인연으로 자신만의 인격을 형성하고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좋은 직장을 얻기를 원할 뿐이다. 대학 공부는 그 최종 목적의 수단일 뿐이다. 한편 교수들도 괴롭다. 우선 자기의 연구를 극단으로 밀고 나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픈 연구자 유형에 속하는 이들은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고 뒹굴어야 하는 교육 업무가 짐이고 부담일 뿐이다. 반면 그런 일을 즐기고 소중히 여기는 교육자 유형에 속하는 이들에게는 계속 떨어지는 연구 성과 제출의 압력이 버겁다.
그런데 20세기 말엽이 되면 여기에 “제3의 충격”이 나타난다. 기업은 물론 국가나 대형 연구재단에서 거액의 연구비를 내걸고 큰 주제의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것이 대학 재정의 주요 원천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에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이러한 대규모의 집단적 연구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만사를 제쳐놓고 거의 동원되다시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도 이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논리가 있다. 기업, 사회, 국가가 봉착한 문제들과 그 필요에 부응해 대학에서 전문성을 축적한 연구자들이 각자의 독자적 연구의 맥락과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답을 낸다는 것이다. 기업, 사회, 국가는 원하는 답을 얻어서 좋고 연구자들은 자신들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확장할 수 있어서 좋으니 그야말로 공생공영이라는 것이다. 말은 참 좋지만 그런 행복한 경우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여기에서 자신의 “개인적” 연구 작업과 집단적으로 수행하는 “공적” 연구 작업을 나누어야 하는 이중부담의 위치로 떨어진다. 교수들도 대학원생들도 정신없이 바쁘다. 가뜩이나 이질적인 연구와 교육이라는 두 가지 과정에 더해 납기에 맞추어 발주자의 필요에 맞추는 지식 생산이라는 또 다른 이질적인 임무까지 주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세 가지 기능을 억지로 겹쳐놓은 지금의 대학이 지속 가능한가이다. 대학이라는 제도의 성격을 요즘의 언어로 풀어본다면,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를 전담하는 역동적인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이러한 역할들을 전면적으로 잠식해 들어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졸업장 발급 기관이자 연구자 양성 기관이자 대규모 지식 생산 기관이라는 것에 힘입어 스스로를 유지하는 구조가 무슨 전망이 있을까? 소수의 최상위 대학들을 제외하면 조만간 존망의 위기에 처할 수 있으며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유서 깊은 대학들의 재정위기와 폐교 사례는 이를 뒷받침한다.
큰 자원 들겠지만 가야 할 길
이 세 가지 기능을 이제 대학에서 풀어놓을 때가 된 것이 아닐까? 대학의 졸업장 대신, 문제 해결 이력, 협업 기록, 공공 과제 참여 내역을 기반으로 국가나 시장의 개입 없이도 공적인 규칙, 대중적 검증, 투명한 기록을 통해 개인에게 인증서를 발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불가능한가? 기업, 사회, 국가가 모두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공공에 꺼내놓으면 거기에 정말로 관심이 있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연구자들이 달라붙어서 서로 개방적으로 지식과 정보와 아이디어를 나누는 전 국민적인 연구 공유장, 즉 연구 결과만이 아니라 연구의 전 과정과 결과까지도 공개적으로 축적되고 검증되는 공공 지식의 장을 조직하는 일은 불가능할까? 자기 연구를 꾸준히 성실히 진행하는 연구자들이 각자의 연구가 필요로 하는 호흡과 시간 지평에 따라 작업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고, 그에 따라 소모임을 만들고 번역과 논문을 생산하도록 하는 지식 인프라의 구축은 불가능할까?
큰 자원이 들어가는 일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에서 우리가 치르고 있는 비용의 크기는 어떠한가? 앞으로 닥쳐올 지식 산업의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직장을 잡아 사회에 진출하고 싶은 게 전부인 젊은이들을 붙잡아놓고 4년간 돈과 시간을 뽑아내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 연구와 지식 생산에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이들이 시간과 돈에 쫓겨 서서히 시들어가는 이 상태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그저 규모만 거대할 뿐 범상한 데이터와 아이디어와 논문으로 이루어진 범상한 결과물로 국가와 사회로부터 거액의 연구비를 받아가는 행태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존스홉킨스대학의 설립은 그 자체가 기존 대학 체제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20세기형 대학의 진화를 촉발한 중요한 한 계기였다. 지금도 그에 맞먹는 파격적인 혁신이 문 앞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