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의 외계인은 피부가 파란색이다. 새파란 피부는 그들이 지구에 없는 이질적인 존재라는 표지다. SF에서는 인물이 파랗거나 투명하거나 어쩌면 형광빛으로 반짝거릴 수 있다. 비현실성은 SF 작품의 완성도를 해치지 않는다. SF는 판타지와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와는 다른 세상을 가정하는 장르이므로 오히려 SF의 설정은 명백히 비현실이어야 한다. 여기서 흔히 오해가 발생한다. SF에서는 아무 설정이나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설정이나 가능한 건 맞다. 그러나 무책임하게,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여기는 건 착각이다. 좋은 SF는 비현실을 현실처럼 구현한다. 무엇을 만들든 아무렇게나 방치하지 않는다. 김보영의 <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에서는 SF의 설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틀려라. 그 외의 쓸데없는 것들은 과학적으로 엄밀하라. 나는 이를 ‘가짜 과학’이라고 부른다. SF에 나오는 설정들은 현실에는 없어야 하지만 작품 속 세계에는 있어야 한다. 비록 현실의 진짜 과학과는 다를지라도, 과학이라고 부를 만한 합리성과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 결과적으로 SF에선 아무 말이나 쓸 수는 없다.
한번 생각해 보자. 인간형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했다. 조사해 보니 그들은 피가 파란색이었다. 인간의 피가 붉은 이유는 적혈구 내의 헤모글로빈이 철을 함유하기 때문이다. 반면 오징어처럼 구리를 함유한 헤모시아닌을 사용하는 생명체의 피는 산소와 결합하면 파란색이 된다. 심해처럼 온도가 낮고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는 헤모시아닌 쪽이 생존에 적합하다. 그러므로 외계 생명체의 피가 파랗다면 헤모시아닌 같은 혈색소가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고, 나아가 이들의 터전이 심해거나 산소가 희박한 곳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럼 기압은 어떨까? 인간처럼 팔다리를 지닌 척추동물이 그곳에선 어떻게 걸을까? 스포츠 경기는 무엇이고, 침실 인테리어는 어떻고, 결혼 선물로 뭘 준비할까? (결혼제도가 있긴 할까? 그들은 번식을 위한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까?) 어떤 인물의 혈액이 파란색이라는 사실은 소설 속 세계의 설정과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존재해야 한다.
모든 세부사항을 설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핵심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SF의 핵심 설정은 중심인물에 비견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에서는 ‘주설정’이라는 표현을 제시한다. 또 생각해 보자.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을 자유롭게 정한다. 만약 1850년 제주도의 12세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그 뒤로는 19세기 중반 제주에 거주한 어린이라서만 가능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제주를 언급하고는 지역적 내용이 전혀 없다면 실망스러운 작품이 될 것이다. 이는 2050년 자유도시 수원에 사는 12세, 2250년 트리톤의 소형 거주구에 사는 12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자유도시나 거주구를 만들었다면, 이들이어야만 가능한 내용이 나와야 한다. 주인공처럼 역할과 기능과 서사가 있어야 한다. 맥락은 달라도 프레드릭 제임슨의 표현을 덧붙일 수 있을 듯하다. 여기서는 “‘세계’의 이상하게도 활동적이며 고동치는 생명력이, 보통 서사적 ‘인물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행위 및 사건 생산의 기능”을 흡수한다.
심완선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