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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조선이라는 나라가 건국된 지 10년,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겪고 새 임금이 즉위한 지 2년이 되던 1402년, 의정부에서는 한 폭의 세계지도를 완성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국도'를 비롯해 '경성' '경도' '황성' '왕성' 등 다른 단어들을 사용했지 '수도'라는 단어는 쓴 적이 없었다.

수도의 원어인 capital이 유럽에서 수도라는 뜻으로 쓰인 것 역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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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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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곧 생존' 강박적 일극 체제, 600년이 지나도 우리 삶을 지배하다

입력 2026.02.03 19:51

수정 2026.02.0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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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개념의 도입과 의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일본 류코쿠대학 소장. 지도의 아래편에 권근이 쓴 발문이 있다. 현재 1402년 제작한 원본은 전하지 않고 몇종의 후대 모사본만이 일본에 전하는데, 류코쿠대학 소장본 역시 후대 모사본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일본 류코쿠대학 소장. 지도의 아래편에 권근이 쓴 발문이 있다. 현재 1402년 제작한 원본은 전하지 않고 몇종의 후대 모사본만이 일본에 전하는데, 류코쿠대학 소장본 역시 후대 모사본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건국된 지 10년,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겪고 새 임금이 즉위한 지 2년이 되던 1402년(태종 2), 의정부에서는 한 폭의 세계지도를 완성했다. 우리가 지금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라고 부르는 바로 그 지도이다. 서쪽으로 아프리카부터, 동쪽으로 일본까지. 유라시아 대륙 거의 전부를 담고 있는 이 지도에 대해 권근은 이렇게 설명했다.

“천하는 지극히 넓다. 안으로는 중국으로부터 밖으로는 사해까지 닿아 몇천만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 것을, 요약하여 몇자 폭에 그림으로 그리니 상세하게 기록하기 어렵다.”

권근의 말대로 이렇게 광활한 세계를 요약해서 인간이 볼 수 있는 크기로 지도를 그린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정보의 부재도 문제지만, 방대한 정보 중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결단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렇다면 조선은 어떠한 정보를 선택했는가? 그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므로 지도란 것이 대부분 소략한데, 오직 오문 이택민의 ‘성교광피도’가 상세하게 갖춰졌으며, 역대 제왕의 국도(國都) 연혁은 천태승 청준의 ‘혼일강리도’에 갖추어 실렸다.”(<양촌집>)

‘성교광피도’는 상세한 정보를 갖추고 있어 기본 바탕으로 삼기 좋았다. 그러나 조선은 거기에 특별한 정보 하나를 더 원했다. 바로 역대 국도, 즉 역사적으로 수없이 명멸해간 역대 왕조의 수도 연혁이라는 정보였다.

1402년, 지도로 그린 새 질서의 선언

1402년은 세계 질서를 재편했던 거대한 격변이 일단락되고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점이다. 유라시아 거대 제국 몽골이 해체된 후 동아시아 각처는 모두 정권이 교체되었다.

중원 대륙에는 명이 들어섰고, 한반도에서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다. 일본 역시 남북조 시기가 마무리되며 무로마치 막부가 들어섰다.

꽤 오랫동안 불안정했던 새 왕조 사이의 관계도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독히도 사이가 나빴던 명의 홍무제와 조선의 태조가 모두 물러난 후 새 황제 건문제와 조선의 태종은 책봉-조공의 안정된 관계를 구축했다. 무로마치 막부 역시 이 질서에 합류했다. 당장 큰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웠던 격동의 세월이 지나가고 세계의 신질서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조선의 관료들은 역대 수도의 연혁을 지도에 표현함으로써 변화의 역정과 현재의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다. 조선에서, 동아시아에서, 수도는 곧 왕조요, 수도의 연혁은 곧 왕조의 연혁이었다.

번역어 ‘수도(首都)’의 짧은 역사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는 ‘국도’라고 표현한 대상은 요즈음 우리가 ‘수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수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리 어렵지 않다. 현대라고 하면, 누구나 “대통령실도 있고, 국회도 있고, 행정기관 같은 중요한 기관들 있는 데 아니오?”라고 쉽게 답할 것이다. 전근대 왕조 시대라고 한다면, “임금님 계신 데가 수도지”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리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역사 경험이 그렇기 때문일 뿐이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수도란 그렇게 명확하거나 보편적으로 동질적인 곳이 아니다.

일단 ‘수도’라는 단어의 역사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는 capital의 번역어로 성립한 것이지, 원래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하던 단어가 아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국도’를 비롯해 ‘경성’ ‘경도’ ‘황성’ ‘왕성’ 등 다른 단어들을 사용했지 ‘수도’라는 단어는 쓴 적이 없었다.

태종 때 만든 지도서 ‘국도’로 지칭
왕의 교화 미치는 ‘도덕적 중핵’서
점차 권력·자원 집중지로 위상 변화

‘지역 거점’ 포괄한 영미권과 달리
‘국도가 곧 왕조 명운’ 1402년 관념
오늘날까지 강박 이어진 게 아닐까

수도의 원어인 capital이 유럽에서 수도라는 뜻으로 쓰인 것 역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capital의 라틴어 어원은 capitalis로 머리를 뜻하는 caput에서 유래했다. 머리는 생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몸을 지휘하는 곳이므로,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가장 중요한’이라든가 생명과 관련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였다. capital이 ‘자본’이라는 뜻을 가진 것도 가축의 머릿수를 재산의 척도로 여기던 인식에서 파생된 것이다. 수도라는 번역어에 ‘머리 수’ 자가 쓰인 것은 이 어원을 살리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일 테다.

흔히 로마가 카푸트 문디(Caput Mundi·세계의 머리)라고 칭해지곤 했다. 그러나 이는 관념적 차원에서 그 위상이 높다는 의미였다. 영어권에서 현대적 의미의 수도, 즉 정치·행정의 중심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capital이 쓰인 것은 17세기경이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capital town이나 capital city라는 표현이 사용되었고, 18세기가 되어서야 capital은 한 나라의 정치·행정 중심 도시를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는다.

국왕과 관료기구가 특정 도시에 상주하고 근대 국민국가의 꼴이 갖춰지면서 정치·행정 도시로서의 기능적 실체와 관념적 정의가 정착된 것이다.

capital의 번역어로 ‘수도’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세기 중반 일본으로, 이는 1890년대 우리나라에도 유입된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경성(京城), 경사(京師) 등의 단어들이 이미 존재했기에 이 단어는 외국의 수도를 지칭하는 용도로만 쓰였을 뿐, 우리의 수도를 지칭하는 데는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까지도 널리 쓰이지 않던 수도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이다. 이전까지 많이 사용하던 경성이 일제강점기에 고유명사화되자 그 대신 수도라는 단어가 많이 활용된 것이다. 그렇게 전개될 수 있었던 데는 중국의 국민당 정부에서 난징을 특별시로 하고 중국 수도라고 칭한 것, 1932년 건국한 만주국 수도에 대해 수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언론을 통해 일반에게 익숙해진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김제정, 근대 수도 개념어의 용례와 번역어 ‘수도’의 등장).

번역어 수도의 역사는 몇가지 지점을 시사한다. 수도의 개념과 실체는 유럽에서 형성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 그 형성과 정착은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과 밀접하다는 것, 그리고 그 번역어를 우리가 사용한 것 역시 70여년밖에 안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엔 우리에게 수도는 너무나도 고정불변의 거대한 실체로만 여겨진다. 그것은 우리의 수도는 유럽과는 또 다른 맥락을 지니고 형성되어왔기 때문이다.

미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가 1890년 편찬한 <한영 뎐>(한영영한자전)에 ‘capital’이 “셔울, 경셩, 도셩, 쟝안, 감영”으로 풀이돼 있다. 번역어 ‘수도’는 사용되지 않았다.

미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가 1890년 편찬한 <한영 뎐>(한영영한자전)에 ‘capital’이 “셔울, 경셩, 도셩, 쟝안, 감영”으로 풀이돼 있다. 번역어 ‘수도’는 사용되지 않았다.

왕조의 명운을 담은 도덕적 중핵, 국도

한국은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비교적 일찍부터 구축했으며, 이에 상응하는 수도의 개념 역시 일찍부터 존재했다. 앞서 살펴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사례처럼 수도가 왕조 그 자체로 비유되는 것은 조선만의 관념도 아니었다.

1396년(태조 5) 명에 사신으로 간 권근은 명 홍무제의 시 세 수를 받고 이에 응답하는 시를 작성해 바친다. 양국 관계가 상당히 좋지 않던 시기, 이들이 주고받은 시는 원만치 않은 양국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지에 대한 함의들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이들의 시에서는 시대와 왕조가 변화했음을 묻는 수단으로 ‘수도’가 언급되었다.

먼저 홍무제는 고려 옛 수도의 쓸쓸한 자취를 읊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물었다(高麗古京). 그러자 권근은 옛 왕조가 천심을 잃었고 새 왕조가 수도를 옮기며 새롭게 좋은 정치를 펼쳐나갈 것이라는 점을 고려의 옛 수도와 조선의 천도를 들어 설명했다(王京作古, 李氏異居). 왕조의 전환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수도를 통해 설명하는 것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수도가 왕조, 나아가 나라를 상징하는 장소로 인식된 것은 이곳이 단순히 정치·행정의 중심지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임금이 거주하며 그로부터 교화가 펼쳐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도덕에 기초한 정치를 추구하는 신유학적 세계관에서는 임금이 펼치는 교화의 중심지는 더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세계관에서 중심은 단지 권력의 중심만이 아니라 가장 도덕적인 곳이어야 했다. <상서>나 <주례>처럼 중국 고대 이상 군주 시절의 제도를 담고 있는 책에서는 임금이 거주하는 중앙에서부터 일정 거리로 멀어질 때마다 왕화(王化), 즉 임금의 교화가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름 붙이지 않은 영역 밖의 세계는 야만의 세계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념과 체제의 전통은 근대 국민국가 시대로 접어들며 또 다른 방식으로 강화되었다. 이제 과거의 도덕적 중핵이라는 상징성은 희미해졌으나, 그 자리를 국가 자원과 권력이 집중되는 독점적 중핵으로서의 위상이 채우게 된 것이다. 영미권의 capital이 지역적 거점을 포괄하는 유연한 정의를 지닌 것과 달리, 우리에게 수도는 오직 ‘서울’이라는 일극으로만 존재한다. 국도가 곧 왕조의 명운이자 문명의 척도였던 1402년의 관념은, 6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서울은 곧 생존이며 기회’라는 강박적인 일극 체제로 치환되어 여전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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