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 초엽의 큰 학자 범중엄이 한 말이다. 범중엄은 보수적 가치를 기반으로 제도개혁을 추진했는데, 후한 녹봉을 주는 대신 관리에 대한 감독과 평가를 엄정하게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전근대 시기 관리는 전문 역량과 도덕 역량을 겸비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 수준은 백성의 스승이 될 정도였다. 그러니까 백성을 잘 가르칠 정도의 전문 역량과 백성의 모범이 될 정도의 도덕 역량을 갖춰야 했다는 얘기다. 범중엄은 관리가 이런 역량을 제대로 갖췄는지는 엄정하게 평가해야 하지만, 이를 평가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러한 역량을 기준 이상으로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먼저 갖춰주는 것이 합당한 처사라고 요구한 것이다.
범중엄의 이러한 요구를 오늘날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어떻게 바꿔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이 있다. 한나라 때 조일이란 문인이 한 말이다. “서적이 뱃속에 가득하여도 돈 한 주머니만도 못하다.”(<질사부(疾邪賦)>) 흥미롭게도 1800년 전쯤 중국에서 한 이 말이 오늘날 한국의 상황을 잘 개괄해주고 있다. 그래서 범중엄의 말은 이렇게 바꿔볼 수 있을 듯싶다. “훌륭한 학자는 후한 연봉에서 나온다.” 현자는 전문 역량과 도덕 역량이 빼어난 이를 가리켰고, 녹봉은 오늘날로 치면 연봉에 해당하기에 그렇다.
학문이 돈에서 나온다는 얘기를 함이 결코 아니다. 실용적 쓸모가 없다며 인문학을 대학에서 축출하고,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기초과학 분야도 축소하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연구비 투입이 모자란 현실이 주류이기에 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돈 되는 곳에 돈이 몰리고 좋은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고등연구 영역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소위 ‘강남 3구’ 출신이 서울대 정시 입학생의 4분의 1 이상이라는 통계가 일러주듯이 돈 있는 집 출신이 공부도 잘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돈이 투입되는 만큼 공부가, 학문 연구의 수월성이 확보되는 사회가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하여 어렵게 쌓은 학식이 지갑에 든 돈만 못하다는 말은 현실의 정확한 반영으로 봐야 한다. 아니, 1800여년 전 중국에서도 그러했고 지금 여기에서도 이러하다면 이는 인간사의 이치일 수 있다. 불편한 진실이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