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님의 침묵>이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다. 시인이고 선승이며 절세의 항일투사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은 1925년 8월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했다. 그리고 이듬해 5월20일 회동서관에서 출간했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동인지 ‘창조’ ‘폐허’ ‘백조’ 등이 속속 출현했고, 시인들이 몰려다니며 서양에서 들어온 신시들을 뜯어보고 흉내 내던 시기였다.
문인들이 떼 지어 술집과 다방 등을 전전할 때 3·1독립선언의 민족대표였던 만해는 3년간 옥살이를 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지만 변호사를 대지 말 것, 사식을 들이지 말 것, 보석을 요구하지 말 것 등 세 가지를 당부하고 이를 실천했다. 1921년 출옥해서도 항일운동의 현장에 있었다. 그러다 문득 오세암에 들었다. 오세암은 백담사에서도 산길을 3시간은 족히 올라가야 나온다. 만해는 인적 끊긴 적막한 공간에서 고독과 마주 앉아 붓을 들었다. 질풍노도의 삶에 지쳤기에 고독이 찻물처럼 따뜻했을 것이다.
일찍이 경허 스님은 연암산 천장암의 한 평짜리 방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그 불광으로 암흑기의 조선불교를 구해냈다. 만해 또한 오세암 작은 밀실에서 석 달 동안 88편의 시를 지어 민족 문학사에 길이 남을 시집을 완성했다. 당시 문단은 외면했지만 산을 내려온 만해의 시들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시 폭풍을 일으켰다. <님의 침묵>은 옥중 생활과 거친 항일투쟁에도 자신을 지킨 설중매(雪中梅)요, 지식인 변절자들이 우글거리는 시궁창에서 피어올린 연꽃이었다. 3·1혁명의 맥박이, 만해가 지은 <불교대전>의 가르침이 들어 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100년이 지났건만 시어들이 싱싱하다. 산문시임에도 운율이 시들지 않아서 모국어가 살아 꿈틀거린다. “만해의 직관은 돌처럼 단단해서 맞으면 시의 이마에서 지금도 피가 솟는다.”(서해성) <님의 침묵>에 실린 시 88편은 ‘님의 침묵’을 주제로 한 연작시라 할 만하다. 시마다 닮은 듯 다른 표정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어린아이도 읽으면 무언가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정작 해설을 하려면 대가들도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만해가 남긴 님은 무엇인가. 읽는 사람마다 다르다. 민족, 애인, 조국, 절대 자유, 중생, 무아 등 다양하다. 만해는 머리말인 ‘군말’에서 님의 윤곽을 잡아준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이탈리아 혁명가)의 님은 이태리다.” 그의 시조 ‘무제1’을 살펴보면 더 분명해진다. “이순신 사공 삼고/ 을지문덕 마부 삼아/ 파사검(破邪劍) 높이 들고/ 남선북마(南船北馬) 하여볼까/ 아마도 님 찾는 길은/ 그뿐인가 하노라”. 이로써 만해의 님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이며, 또 그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민족임이 분명하다.
만해가 그려낸 님은 ‘간절한 그리움’의 변형이기에 지난 100년 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님의 침묵>에 실린 시들은 신비롭고 묘하다. “읽을 때마다 다른 곳에 밑줄을 긋게 한다. 그런 점에서 영원한 사랑의 경전이다.”(윤제림) 만해는 단 한 권의 시집만을 남겼지만 <님의 침묵>이 없었다면 근대 시문학사의 첫 장이 초라했을 것이다.
만해는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 망우리 역사문화공원 내 묘지에 묻혀 있다. 불멸의 정신적 유산을 남겼지만 형편은 늘 어려웠다. 올봄에는 <님의 침묵> 100주년 행사가 곳곳에서 펼쳐질 것이다. 평생 궁핍했으니 행사들이 풍성했으면 좋겠다. 시인의 나라답게 격조 높은 축제를 기대해본다. 이왕이면 남과 북이 함께 만해를 기리는 따뜻한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김택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