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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도롯가 앞 가설 울타리 일부가 휑했다.

그런 이씨의 동네는 2006년, 재건축단지로 지정됐다.

이씨가 살던 아현2구역은 노후한 단독주택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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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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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 길바닥에서 5년, 마지막 터전인 트럭은 불타 사라졌다

입력 2026.02.04 06:00

수정 2026.02.0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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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혜림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도롯가 앞 가설 울타리 일부가 휑했다. 철제 가림막이 흐느적 녹아내린 자리로 검게 그을린 자국이 짙었다. 지난해 12월28일 일어난 화재의 흔적이다. 접근금지 테이프가 둘린 울타리 앞을 이종열씨(78)가 서성였다. 이씨는 지난 5년 간 1t짜리 트럭을 터전 삼아 이곳에서 살았다. 새카맣게 탄 트럭은 이날 구청에 의해 견인됐다. 홀로 남은 이씨를 만나 길바닥을 떠나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이씨의 시간은 ‘재개발 광풍’이 아현동을 휩쓴 20년 전에 멈춰 있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도롯가 가설울타리 앞에서 이종열씨(78)가 카메라를 보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도롯가 가설울타리 앞에서 이종열씨(78)가 카메라를 보고 있다. 우혜림 기자

이씨에게 아현은 “평생의 보금자리”였다. 이씨의 할아버지부터 3대가 한집에서 살았다. 이씨는 아현역 인근의 공업사에서 첫 직장을 다녔고 아현 가구단지에서 운송 기사 일을 했다. 이삿짐센터 일을 하며 서울 곳곳을 누비다 고단한 몸으로 돌아갈 곳은 늘 아현동 집이었다. 그런 이씨의 동네는 2006년, 재건축단지로 지정됐다.

이씨가 살던 아현2구역은 노후한 단독주택 마을이었다. 당시 단독주택 재건축은 기반시설이 열악한 지역이 많아 사실상 재개발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재개발과 달리 ‘민간사업’으로 간주해 세입자 보호 대책이 없었다. 아현2구역의 거주자들은 이씨처럼 50년 이상 거주한 집주인이거나 저렴한 방을 찾아온 세입자였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의 동네가 투기가 모여드는 ‘황금 땅’이 됐다. ‘뉴타운 광풍’이 일면서 재개발·재건축을 포함한 도시 정비 사업이 급증하던 시기였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도롯가에서 이종열씨(78)가 불 탄 흔적을 보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도롯가에서 이종열씨(78)가 불 탄 흔적을 보고 있다. 우혜림 기자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것은 세입자 뿐만 아니라 집주인들도 마찬가지였다. 60~90대 노인들이 일을 그만두고 집을 지켰다. 이씨도 겨울날 비를 맞아가며 보초를 섰다. 이씨에 따르면 용역들은 노인들을 이불에 말아 들고 나왔다. 대형 쇠망치와 쇠지렛대로 유리창과 문을 부순 뒤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오물을 뿌리고 소화기를 분사했다. 어떤 이는 실신했고 어떤 이는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리고 2018년 12월4일, 아현2구역의 세입자였던 박준경씨(당시 37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광고 전단 뒷면에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말을 남겼다.

서울시는 박씨의 죽음 이후 단독주택 재건축 세입자에 대해 임대주택 등을 지원하도록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씨와 같은 영세한 집주인들이 재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대책은 없었다. 당시 아현2구역엔 2357가구가 살았다. 이곳을 철거하면 새로 1419세대가 들어올 예정이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원주민의 3분의 1은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집주인들이 제시받은 보상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씨는 당시 주택 실거래가 3분의1 수준의 공탁금을 받았다고 했다. 이씨를 비롯한 거주민들은 이 돈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

지난달 29일 마포구 아현동의 한 도롯가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가설울타리 너머로 재건축으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우혜림 기자

지난달 29일 마포구 아현동의 한 도롯가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가설울타리 너머로 재건축으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우혜림 기자

2018년 12월 은평구의 반지하방으로 이사한 이씨는 꿈속에서도 용역과 싸웠다. 깨어나 보면 “내 집”이 아니었다. 부모님과 조부모를 떠나보낸 곳, 자식들을 낳아 기른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이씨는 2021년 5월11일, 다시 아현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마포더클래시’라는 고층 아파트로 변해버린 자신의 옛 보금자리 앞에 트럭을 세웠다. 이삿짐을 나르던 적재함에 앉아 떠오르는 질문을 써 내려갔다. “가진 것은 집밖에 없는데 이것마저 빼앗아 가는 자는 누구인가?”, “태어나 평생 살던 집을 헐값으로 내동댕이치는 이것이 정녕 대한민국의 법이란 말인가?”, “가난한 서민의 재산을 빼앗아 투기꾼들의 배를 불려주는 것이 평등한 세상인가?” 질문이 멈추지 않아 이씨는 아현을 떠날 수 없었다.

이씨는 한파가 덮친 지난해 겨울, 추위를 피하고자 주전자 물을 끓이다 깜빡 잠이 들었다. 불은 이씨의 두 손과 얼굴로 옮겨붙었다. 수백 장씩 써 내려간 이씨의 공책들도 다 타버렸다.

이씨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며 웃으면서도 5년간 머물렀던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내 것을 돌려달라는 거예요. 내 권리를. 법이라는 것이 다수를 위한다고 해도 힘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으면 안 되잖아요.” 이씨가 붉은 글씨를 새긴 울타리 너머 그의 옛 보금자리로 높이 아파트가 솟아 있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도롯가에서 이종열씨(78)가 서 있다. 이씨의 뒤로 이씨가 붉은 글씨로 쓴 ‘안녕 이종열’이란 글자가 보인다. 우혜림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도롯가에서 이종열씨(78)가 서 있다. 이씨의 뒤로 이씨가 붉은 글씨로 쓴 ‘안녕 이종열’이란 글자가 보인다. 우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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