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법 청사. 이준헌 기자
암호화폐(코인) 시세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일당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2024년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코인 불공정 거래 혐의가 적용된 첫 판결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재판장 이정희)는 4일 오후 2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시세조종업자 이모씨(35·가상자산 업체 A사 대표)에게 징역 3년과 벌금 5억원을, 공범인 A사 전 직원 강모씨(30)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이씨에 대해 징역 10년과 벌금 230억원을, 전문기술가로 범행에 가담한 강씨에 대해서는 징역 6년을 각각 구형했다.
이들은 2024년 7월부터 10월까지 해외 가상자산 발행 재단으로부터 전송받은 코인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고가에 매도하기 위해 거래량을 인위적으로 부풀린 혐의를 받는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21일 해당 거래소에서 이 코인의 일평균 거래량은 약 16만개였는ㄷ 시세조종이 시작된 같은달 22일에는 245만여개로 15배 이상 급증했다. 이 가운데 이씨의 거래 비중이 약 89%였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세조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였다. 가상자산 시장은 주식 등 증권시장과 달리 가격 변동성이 크고 해외 거래 비중이 높아 가격이나 거래량을 인위적으로 움직이더라도 이를 불법 행위로 단정하기 어려웠다. 검찰은 가상자산 관련 시세조종에 형법상 사기죄나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처벌을 시도해왔지만 구성요건이 맞지 않아 실제 유죄 판결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들의 행위는 시세조종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단순히 거래량이 증가했다는 외관만으로 곧바로 시세조종이나 고의를 단정하기 어렵다”며 “해당 거래가 경제적 합리성을 갖는지, 피고인에게 그러한 거래를 할 구체적인 사정이 있었는지 등 거래의 동기와 경위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손실 발생을 감수하면서 장기간 낮은 가격에 코인을 반복적으로 매수·매도했는데 이는 경제적 합리성이 결여된 행위로 볼 수 있다”며 “이러한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의 일반 투자자들에게 거래가 활발하다는 오인을 일으켜 예측하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양형 사유와 관련해 “피고인들이 모두 초범인 점, 공범인 강씨가 종속적 지위에서 소극적으로 가담한 점을 유리하게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 검찰이 주장한 71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에 대해서는 “충분한 자료로 소명되지 않았다”며 피고인에게 8억4000만원 상당의 추징금을 명령했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 선고까지 나온 첫 사례다. 법조계 관계자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세조종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첫 판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