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바람 쐬러 한양에 댕겨왔는데 그새 강력한 한파로 집이 땡 얼었네. 방심하고 모터기를 감쌌던 온열기 전원을 껐다가 낭패를 본 셈. 알려진 바 영험한 목사라고도 하덩만 신내림은 고사하고 물내림도 못하게 생겼네. 수세식 변기가 얼어 물이 안 내려가. 그렇담 비상용 바깥채 푸세식이 있지. 생태변소 이름이 거창하게도 ‘수양각’. 고드름이 언 한데에서 엉덩이를 깐 채 쪼그리고 있노라면 전신이 오돌돌, 수양은커녕 볼일도 못 보게 된다.
반나절이 되어서야 집에 온기가 돌아왔다. 심폐소생술 끝에 시퍼렇던 입술이 붉은 핏기가 감돌 듯 간신히 죽다 살아났다. 생텍쥐페리의 글 ‘바람과 모래와 별들’에 나오는 한 구절을 오늘 내 몸으로 살아낸 것 같더라.
기요메가 안데스산맥을 행군하다가 조난당했던 때의 일을 들은 적이 있다. 4박5일 동안 밧줄도 없고 식료품도 없이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무려 4500m의 절벽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사투를 벌였다고 해. “발을 한 발자국씩 앞으로 옮기는 게 유일하게 나를 구할 수 있었다네. 그리고 또다시 한 걸음. 매번 그렇게 발을 떼어 걸었지.” 구출된 뒤 그가 한 말이다.
이 냉골에서 간신히 발을 한 발자국씩 떼며 살아보겠노라 불을 지피고, 냉골을 녹이고, 유자차를 호호 불어가며 마셨지. 선가에 내려오는 이야기도 한 자락 해볼까나. 눈보라와 냉기가 사나운 날, 발목이 삔 스님이 암자에 고립되어 딱 얼어 죽게 생겼다. 마침 모셔져 있던 목조불상이 보였지. 이를 넘어뜨려 쪼개가지고서 군불을 지폈대. 절집에선 귀한 목숨을 생불이라 한다. 오, 생불이여! 발을 한 발자국씩 앞으로 옮기는 심정으로 한 치 앞을 꿋꿋이 헤쳐온 모든 인생이여. 경이롭고 늠름해라. 올 추위는 이쯤 끝맺으면 좋으련만. 이 몸은 수양각까지 수양하러 갈 엄두가 도저히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