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방송가는 그야말로 경연 프로그램 전성시대다. 트로트부터 힙합, 요리, 메이크업 등 분야도 다양하다. 요즘 한창인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도 참가자들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 인생을 건 대결을 벌인다. 결과가 노래 실력에 비례하면 좋겠지만 종종 대진운이 승패를 좌우한다. 어떤 조에 속했는지, 누구와 맞붙었는지가 중요하다. 또 가수가 처한 안타까운 사연이나 절실함 같은 정성적 요소가 심사위원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실력이라는 본질 외에 주변 환경과 운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경연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대학 입시판이 떠오른다. 수험생의 학업 역량이라는 정량 지표가 있음에도 실제로는 어떤 고등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과목을 선택했는지, 그해 입시 정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따라 대입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이런 불확실성에는 30년 넘게 한국 교육을 지배한 ‘변별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가 수능과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변별력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특히 각 대학은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선발 변별력이 떨어진다고 강하게 반대한다. 한마디로 절대평가는 변별력이 없으니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수능은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지금의 수능은 순전히 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보기 어렵다. EBS 교재 연계율 50%라는 기계적인 틀 속에서 출제자와 사교육 시장은 숨바꼭질을 반복한다.
인공지능(AI)과 사교육의 물량 공세 포위망을 뚫고 수능 출제위원이 ‘새로운 문제’를 내는 건 이제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 됐음에도 출제위원은 사교육 적중 문항을 피하고자 지문을 비틀고 꼰다. 이 과정에서 2026학년도 수능 국어나 영어처럼 난도 조절에 실패한 ‘괴물 문항’이 학생들을 덮친다. 이것이 과연 학생의 사고력을 측정하는 올바른 방식인가. 수능은 요령을 겨루는 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이처럼 명실상부하게 존재하는 대학 서열과 한정된 대입 정원 등으로 인해 변별력은 우리 교육의 모든 제도와 시험을 관통하는 절대적 요소가 됐다. 그러나 동시에 족쇄로도 작용한다. 평가의 본질은 학생 성취도를 확인하여 더 높은 성취를 이루기 위한 것이나 어느샌가 ‘줄 세우기’ 도구로 전락했다. 이런 모순은 요즘 교육계 화두인 고교학점제만 봐도 알 수 있다. 고교학점제가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려면 학생은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수강 인원이 적은 과목을 선택하면 내신 등급에서 치명타를 입기 십상이다. 결국 내신 절대평가가 전제돼야 고교학점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 필자가 변별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절대평가를 지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결단이 필요하다. 올해로 도입 33년째를 맞은 상대평가 수능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한 듯싶다. 산업화 시대의 선발 도구인 오지선다형 상대평가 시험으로 AI 시대의 창의적 인재를 가려내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변별력이라는 핑계로 현행 수능을 유지하기보다는, 수능을 자격고사화하고 절대평가로 전환해 그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 합숙형 폐쇄 출제 방식에서 벗어나 개방형 문제 은행 등 새로운 평가 방식도 고려해봄 직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문항의 동등화(시험 간 난이도 차이를 보정하는 절차) 처리나 대학별 선발의 어려움, 그로 인한 사교육 팽창 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지만 그것이 낡은 제도를 이어갈 이유는 되지 않는다.
매해 입시는 개편 논의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제도 자체가 시대와 맞지 않기 때문일 테다. 물론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이 아직 시행조차 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새로운 개편안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수능의 역할과 위상을 근본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운이 결과를 바꾸는 것은 예능 장치일 수 있지만 입시는 다르다. 아이들 미래가 대진운, 눈치, 기형적인 문제 풀이 기술에 의해 결정돼서는 안 된다. 변별력에서 헤어나 성취와 성장이라는 평가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