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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증에 걸린 벽

입력 2026.02.04 19:54

수정 2026.02.0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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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이는 병원 대기실에 앉아 무감각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면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게 된다. 돈을 쓸어 담는 병원 안에 조악한 이발소 그림 몇개가 창백하게 걸려 있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을 흉내 낸 짝퉁도 있다. 병든 몸을 치유하는 것도 좋지만 이 공간에 온 이들의 눈과 마음을 행복하게 해줄 빼어난 이미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병원이다.

어딘가를 가게 되면 우선적으로 그곳에 걸린 다양한 이미지를 살펴보게 된다. 사실 자신의 집 벽에 무엇이 걸려 있는지 신경 쓰는 이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자신이 걸치는 옷이나 가방 등은 그토록 까다롭고 신중하게 선택하면서도 자신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곳, 살고 있는 곳에 어떤 이미지가 서식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대부분은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그것들이 어떻게 해서 여기에 걸리게 되었는지 알기도 어렵지만 동시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들이라 그냥 방치해두었을 것이다. 자기 돈을 주고 작품을 구입해서 걸어두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컬렉터들의 경우다. 자기 결정이 아니라 화랑이 권유하는 대로, 시장에서 잘 팔리는, 그래서 투자가치가 있다는 꼬임에 넘어간 것이다.

자신의 안목과 감각에 의해 선별된 것들이 아니라 남의 눈에 의존하거나 자본의 욕망, 천박한 과시욕에 의해 생각 없이 사들이고 걸어두는 것이 상당수다. 그래서 모든 집이 같은 그림들로 도배되어 있는 희한한 풍경을 만난다.

이전에 모 신문사의 사장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커다란 책상과 살찐 소파가 자리 잡은 곳에 감사패와 트로피가 가득 들어찬 진열장, 횡설수설하는 책장이 놓여 있고 벽에는 사진과 달력, 휘호와 그림들이 정신분열증적으로 걸려 있었다. 비단 이 신문사 사장실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사무실이 이런 지경이다. 자신의 거주공간이나 사무실에 걸린 작품들은 그곳 주인의 감수성, 미의식, 그리고 세계관까지도 적나라하게 표방하는 핵심적인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입고 있는 옷이나 읽고 있는 책, 소유하고 있는 물건 등이 결국 자신만의 감각과 가치관을 외화시키는 것이라면 내가 일하는 공간, 사는 곳에 걸리는 작품 역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 공간의 주인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의 정신과 심성이 어느 수준인지, 예술에 대한 취향과 안목이 어떤 것인지를 단박에 발설하는 것이 벽에 걸린 그림일 것이다.

옛 선비들은 사랑방에 자그마한 서안을 놓고 그 위에 몇권의 책과 벼루와 연적 등을 비치하고 벽에는 뛰어난 족자 한 폭 걸고, 사방탁자에는 담백한 백자항아리와 난 화분을 깔끔하게 배치하면서 선계와도 같은 공간을 절묘하게 조성했다. 개결하고 질박한 선비 정신을 자신의 방 안에 가설한 것이다. 나는 그런 문인들의 사랑방이 최고의 설치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그 방 주인이 스스로 주문하고 손수 선택해서 구비한 것들이기에 그의 세계관, 가치관 등을 대변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선비들이 사용한 서안이나 사방탁자, 문방구 등은 동일한 것이 있을 수 없고 저마다 차이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과도하게 넘쳐나는 이미지들이 온갖 공간을 미친 듯이 잠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미지들은 과연 무엇일까? 내 방과 사무실에 이미지 하나를 걸어두는 것은 그것을 빌려 나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미술의 생활화나 예술을 사랑하는 일은 우선 자기 방에 무엇이 걸려 있는가를 성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박영택 미술평론가

박영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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