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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한·중·일 선택의 현재

입력 2026.02.04 20:00

수정 2026.02.0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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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을 지나며 중국, 일본, 한국에서 비슷한 내용의 사회 혹은 정치사상이 대두했다.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가 그것이다. 그 내용은 비슷했고, 동시에 당시 각국 상황과 밀접히 관련됐다. 1856년부터 1860년까지 치러진 제2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는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완패했다. 곧 그들의 본격적인 침략과 약탈이 중국 안에서 가속화될 것이 명백했다. 중체서용은 중국의 전통 가치를 몸통(體)으로 삼고,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여 청 왕조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근대화 전략이었다. 전통 가치의 핵심은 중국의 사회·정치적 기득권 구조, 즉 권력구조였다.

화혼양재는 1868년 시작된 일본 메이지유신의 핵심 가치였다. 일본 고유의 정신(和魂)을 근본으로 서양의 학문과 기술(洋才)을 받아들이자는 사상이다. 영국 해군에서 도입해 일본 육군을 통해 전파된 카레라이스, 서양식 고기 요리를 일본식 반찬처럼 요리한 한바그, 서양 음식인 빵에 전통적 재료인 팥소를 넣은 단팥빵 등은 먹거리 차원의 화혼양재였다. 조선의 동도서기는 1880년대 전후로 김윤식 등 온건개화파 관료들이 청나라의 중체서용을 조선에 도입한 것이다. 세 나라는 서구의 침략에 노출된 1860년 초반부터 1880년 무렵까지 20년 사이에 이렇듯 비슷한 보수적 사회·정치 개혁을 추구했다.

세 나라가 추구했던 보수개혁의 결과는 크게 엇갈렸다. 청나라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며 30년에 걸친 중체서용의 결과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청나라는 변법(變法) 운동을 거쳐서 손문의 혁명사상을 맞이했다. 일본의 화혼양재는 당시에 성공했다. 일본은 천황제와 기득권 세력을 지켜냈다. 동시에 서양의 과학, 기술, 제도 등 실용적인 지식과 기술을 따라잡았다. 그 결과 일본은 이미 20세기 초 제국주의 국가 반열에 올랐다. 조선의 동도서기는 실패했고 그 결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이후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한국은 세 나라 중 가장 가혹한 20세기를 보냈다.

약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한국, 중국, 일본에서 보수적 개혁운동 이후 150년 정도가 지났다. 그 운동에 대한 역사적 조감이 가능한 시간이 되었다. 그사이 세 나라 모두 전쟁과 혁명과 커다란 사회·경제적 변화를 경험했다. 겉으론 정치체제 변화가 있었다.

뜻밖에도 오늘날 중국은 중체서용에 성공한 듯 보인다. 권위주의적 권력구조의 변화 없이 서구 기술문명의 성과를 흡수해 미국과 함께 명실공히 세계의 양대 강국이 되었다. 중국 엘리트들은 이제 민주주의를 ‘서구식’ 권력구조 유형으로, 자국의 권력구조를 그와 다른 유형으로 인식하는 듯 보인다. 그에 따라 인권은 국가 권력 앞에서 상대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듯하다. 화혼양재에 성공한 일본은 전통적 가치를 잘 보존했다. 일본 중의원 의원의 약 30%가 세습 정치가로 분류되고, 자민당이 1955년 집권한 이후 약 4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그런 양상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2026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한국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을 차례로 국빈방문했다. 이재명 대통령에 따르면 중국 주석이 한국과 중국은 서로 이사 가지 못하는 이웃이라고 했단다. 일본 역시 그렇다. 19세기 후반에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서구의 침략 앞에서 비슷한 지향을 했지만, 그 후 각국이 걸은 역사의 궤적은 크게 달랐다. 오늘날 그 궤적을 되돌아보면, 흥미롭게도 당시에 이해되었던 것과는 달라 보인다. 중국이 ‘중체’를, 일본이 ‘화혼’을 유지했던 반면 한국은 ‘동도’ 유지에 실패한 듯 보인다. 그 대신 한국은 중국이 짧게 추진했다가 실패했던 ‘변법’을 통해 스스로 강해지는 자강(自强)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세 나라의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이다.

이정철 퇴계학연구원

이정철 퇴계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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