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체결 ‘뉴스타트’ 5일 만료…50여년 이어진 핵 군축 조약 ‘종언’
러 1년 연장 제안, 미 공식 입장 없어…트럼프 “만료되면 만료되는 것”
양국 간 군비경쟁 심화 우려…중·영·프랑스, 핵보유국으로 확산 가능성
전 세계 핵무기의 80% 이상을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 간 핵 군축 조약이 곧 만료된다. 냉전 시기부터 50년 넘게 이어져온 미·러 간 제도적 ‘핵 안전판’이 사라지면 제약 없는 핵 군비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 핵무기 수를 제한하는 신전략무기감축조약(뉴스타트)은 양국이 연장에 합의하지 않으면 5일(현지시간) 공식 만료된다.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당시 소련)가 1972년 전략무기제한협정을 체결한 후 이어온 상호 핵 제한·감축 프로그램의 마지막 조약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2010년 뉴스타트를 체결해 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략폭격기 등 핵무기 운반체를 700기, 핵탄두를 1550기 이하로 제한하고 주기적으로 상호 핵시설을 사찰하도록 했다. 미·러는 한동안 뉴스타트에 따라 전략적 안정이라는 균형을 도모해왔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하면서 조약은 사문화됐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뉴스타트 1년 연장을 제안한 반면 미국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뉴스타트는) 만료되면 만료되는 것”이라며 “더 나은 조약을 만들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때 새 조약에 ‘중국 참여’를 거론하기도 했다.
뉴스타트 만료가 다가올수록 냉전 후 처음으로 전 세계 핵무기 개발 경쟁이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러 간 전략 핵무기 제한이 사라지면 핵 역량과 의도에 대한 불안이 커져 상대국 핵전력을 압도할 수준의 핵무기 확보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영국·프랑스 등 다른 핵보유국이 군비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2010년 당시 러시아와 뉴스타트를 체결한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SNS에서 “조약 종료는 수십 년간 이어져온 외교적 노력을 무의미하게 무너뜨리고,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또 다른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사회 긴장이 고조된 시기에 뉴스타트가 만료된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키운다.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핵전력을 과시해왔고, 중국은 빠른 속도로 핵무기 비축량을 늘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 실험 재개”를 거론했고, 유럽에서도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자체 핵우산’ 필요성을 논의하고 있다.
러시아는 뉴스타트 만료일이 다가오자 연일 “세계가 예전보다 더 위험해질 것”(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라며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다만 중국이 향후 핵 군축 체제에 포함돼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오히려 핵보유국 프랑스와 영국 등이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중국은 핵 군축 협정 참여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미국과학자연맹(FAS)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러시아(5459기)와 미국(5177기)이 전 세계 핵탄두의 약 86%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핵탄두 약 600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