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27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인근에서 ‘다이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전국 기초지자체들이 제출한 지역 온실가스 감축 전략을 담은 탄소중립기본계획(탄기본)을 보면 각 지자체마다 ’비슷한 정책’을 가지고 목표 시점에 맞춰 ‘벼락치기’로 줄이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 여건과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인구 규모와 환경, 에너지·산업 구조가 다른데도 전략은 대부분 비슷하게 나열돼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감축은 미루고 숫자만 늘린 지자체 탄소중립 계획
4일 경향신문·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녹색전환연구소가 확보한 전국 226개 지자체 탄기본을 연구소가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지자체들이 탄기본에서 채택한 탄소 감축 사업 유형은 총 211개에 달한다. 계획서 상에는 다양한 감축 수단이 나열돼 있지만, 실제로는 몇몇 특정 사업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지자체들이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가장 많이 채택한 사업은 ‘도시 숲·공원·정원 녹지 조성’으로 탄기본 계획서에 총 559차례 이름을 올렸다. 다수 지자체가 유사한 내용을 사업 명칭만 바꿔 반복적으로 포함시킨 결과다.
‘조림·숲가꾸기·산림경영·산림 재해 대응’ 사업을 택한 횟수도 508회에 달했다. 두 사업은 모두 ‘흡수원’을 통한 감축안이다. 흡수원 사업은 산림 등 자연 생태계가 탄소를 흡수·저장하는 기능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탄소 배출을 직접 줄이기보다는, 이미 배출된 탄소를 자연이 흡수하도록 하는 보조적 수단에 가깝다. 산림의 탄소 흡수 능력은 기후 조건과 관리 방식, 산림 훼손 여부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안정적인 감축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이 흡수원을 사실상 ‘기본 감축 수단’으로 선택한 이유는 주민 수용성이 높고 기존 산림·녹지 관리 사업과 연계해 추진하기 쉽기 때문이다. 시행 절차가 비교적 단순하고, 공간 조성·관리 사업 명목으로 예산 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감축 사업 1순위로 꼽힌다. 보고서는 “흡수원 사업들이 실제로 새로운 감축을 만들어내는지, 장기간 유지될 수 있는지, 감축량 계산의 근거가 충분히 타당한지를 더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효율성 장담 어려운 도시숲·LED 교체 등 특정 사업에 ‘올인’
흡수원에 이어 지자체들이 선호한 감축 사업은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생산(418회)과 건물 부문 사업인 LED 교체(351회)였다.
LED 교체는 가로등과 도로, 간판 등에 설치된 형광등·백열등을 전력 소비가 적은 LED로 바꿔 탄소 배출을 줄이는 사업이다. 감축 성과를 수치로 계산하기 쉽다는 점에서 다수 지자체가 반복적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LED 교체 사업 역시 채택 빈도에 비해 탄소 감축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LED 교체 범위와 기준선 설정 방식에 따라 감축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택 횟수는 상위권에 속했지만, 감축량 기준으로는 같은 건물 부문의 제로에너지빌딩이나 건물 에너지 효율 등급 개선 등 구조 개선형 사업들에 미치지 못했다.
도시가스 공급과 LPG 사업을 주요 감축 수단으로 채택한 점도 눈에 띈다. 석탄이나 기름을 도시가스·LPG로 대체하면 당장은 배출이 줄어드는 듯 보이지만, 도시가스 배관망 구축과 같은 인프라 투자는 장기적으로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고착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도시가스·LPG 확대에 따라 건물 부문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감축 수단 상위권에 오른 친환경 보일러 사업의 경우 실행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친환경 보일러 사업은 노후 가정용 보일러를 질소산화물(NOx) 배출이 적은 보일러로 교체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지자체들은 이 사업을 통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537만4000t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올해 정부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국비 지원이 중단됐다. 이대로라면 감축량 공백을 피하기 어렵다.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는 캠페인형 감축 사업도 포함됐다. 전남 고흥군은 2030년까지 이른바 ‘친환경 교통 캠페인’을 통해 온실가스 6967t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군민들이 차량 급가속·급감속과 공회전을 줄이고, 어선을 천천히 운항하도록 유도해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참여 수준과 행동 변화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감축량’을 산정한 셈이다.
목표 시점인 2030년에 감축 부담 몰리도록 설계
감축 경로 역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기초지자체 226곳 가운데 연도별 감축 경로를 제시한 곳은 179곳으로, 이들 지자체는 감축 부담을 목표 시점인 2030년에 집중시키는 구조를 택했다.
2018년 배출량을 100으로 놓고 보면 2025년에는 87.5%, 2029년에는 78.2% 수준까지 완만하게 줄인 뒤, 2030년 한 해에만 9.3%를 줄이도록 설계했다.
지자체들이 설정한 감축 경로는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방식과는 다르다. IPCC 등 국제기구는 초반부터 꾸준히 줄여 나가는 것이 지구 온난화 억제에 더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
박은옥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팀 연구원은 “지자체 탄소중립 계획은 지역별 여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며 “지역에 맞는 감축 방식과 경로를 설계하지 않는다면 탄소중립 계획은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