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한 지난 1월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판결 직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효진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 제조사들을 상대로 낸 53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 패소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2심 재판부가 “흡연과 폐암 인과관계를 일부 인정했다”며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 이사장은 5일 신년간담회에서 “패소 판례가 남으면 사회적 인식이 고착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안다”면서도 “여기서 멈추면 담배 유해성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묻지 못한다. 비용이 들더라도 상고는 반드시 가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 담배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전날(4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공단은 장기간 흡연 뒤 폐암 등을 진단받은 가입자들에게 지급한 급여비(진료비)를 담배 제조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며 2014년 533억여 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건보공단이 상고에 나선 것은 2심 판결이 1심과 달리 흡연과 폐암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상당 부분 인정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1심은 인과관계 자체를 부정했지만, 2심은 인과관계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며 “법조계 전문가들도 이를 두고 ‘진일보’한 판결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2심 재판부가 개별 흡연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법리적으로 다퉈볼 여지는 충분하다는 논리다.
공단은 소송 전열을 전면 재정비해 대응할 방침이다. 1·2심을 맡았던 대리인단 교체까지 시사했다. 정 이사장은 “기존 로펌은 짜낼 수 있는 논리를 다 썼다”며 “대리인을 교체해서라도 상대측 빈틈을 파고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2심 재판부가 ‘과거에도 담배 유해성이 알려져 있었으므로 흡연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라고 판단한 대목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1960~70년대는 군대에서 담배를 무료로 지급하며 사실상 흡연자를 양산하던 시절”이라며 “미국 소송 사례처럼 당시 담배회사들이 유해성과 중독성을 알면서도 은폐했다는 점을 부각해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승소라도 끌어낸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