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은 띠 모양의 발진과 함께 해당 부위의 극심한 신경통이 나타나는 증상을 보인다. 게티이미지
급격한 고령화 추세에 따라 대상포진 발병 규모가 확대되면서 다양한 합병증 위험도 높아져 환자들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방 효과가 높은 생백신 접종으로 이런 문제를 개선할 수 있지만 고령층의 보편적인 접종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역별 편차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내 대상포진 통계를 보면 2014년 64만6710명이던 환자 수는 2024년 76만2709명으로 10년간 17.9% 증가했다. 특히 발병률이 급격히 높아지는 50대 이상 환자는 이 기간 동안 38만9771명에서 50만8106명으로 30.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병을 앓는 환자가 늘어나면서 대상포진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노년기에 흔히 겪는 질환이라는 인식 대신, 예방을 개인의 선택에만 맡기기 어려운 초고령사회의 구조적인 건강 부담 요인이라는 쪽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상포진은 과거 감염됐던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절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 기능이 약화될 때 다시 활성화되면서 심한 통증과 발진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고령층에서 발병 위험과 중증도가 함께 높아지는 이유로는 면역 노화와 이미 앓고 있는 만성질환 등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급성 증상이 가라앉은 뒤에도 신경통이 길게는 수년간 지속되는 경우가 많고, 반복적인 외래 진료와 약물 치료, 입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의료비 부담을 포함해 복합적으로 노년기 삶의 질 저하를 유발한다.
이 때문에 대상포진은 ‘치료보다 예방이 효과적인 질환’으로 분류돼 왔다. 다수의 국제 연구에서 대상포진 생백신 접종이 고령층에서 대상포진 발생을 유의미하게 줄이고, 중증 대상포진 및 신경 합병증 발생 위험도 함께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예방 효과가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최소 5년에서 길게는 8년 이상 지속된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어 예방접종이 장기적인 건강관리 수단이라고 평가하는 흐름도 뚜렷해지고 있다.
최신 연구 결과 대상포진이 단순히 하나의 질병이 아니라 다양한 합병증을 통해 노인 건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라는 사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연동건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연구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활용해 50세 이상 성인 집단을 장기간 추적 분석한 연구를 보면 대상포진 생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각종 질환 발병 위험도가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백신 접종군은 대상포진 발생률을 비롯해 대상포진 후 신경통, 대상포진 뇌염, 대상포진 관련 입원 위험까지 유의미하게 감소시켰으며, 심근경색·뇌졸중·사망을 포함한 주요 심혈관사건 발생 위험 역시 20% 이상 낮추는 효과를 보였다. 이 보호 효과는 접종 이후 최대 8년 이상 지속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대상포진 바이러스 재활성화 과정에서 유발되는 전신 염증 반응이 혈관 기능 저하와 혈전 형성 위험을 높일 수 있다”며 “생백신 접종이 이 같은 염증 부담을 장기간 낮췄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생백신 접종은 만성폐쇄성폐질환과 천식, 간질성 폐질환 같은 호흡기질환을 비롯해 간부전·간경변을 포함한 간담도질환 위험까지 낮출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제2형 당뇨병이 있는 환자에게 대상포진 및 관련 합병증 위험을 줄여 고령층에서 흔한 다양한 만성질환에도 일관되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향 또한 보였다. 이는 대상포진 생백신이 특정 감염을 막는 역할을 넘어, 전신 염증과 면역 불균형이 반복되면서 커지는 신체적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상포진 예방접종과 치매 사이의 관련성에 관한 분석 결과도 있다. 연동건 교수는 “대상포진 생백신 접종군에서 치매 진단 위험이 낮거나 발현 시점이 지연되는 경향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최근 캐나다와 영국에서 발표된 연구에서도 생백신 접종이 치매 발생을 예방하거나 늦출 수 있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어 이런 연관성은 특정 국가나 단일 연구에 국한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상포진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더 이상 개인이 감내해야 할 노년성 질환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시각은 확산되고 있으나 국내에선 아직 예방접종 지원 면에서 지역별 편차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소 또는 의료원 등의 기관을 통해 대상포진 무료 접종 지원사업을 시행하는 지자체가 70%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각 지자체마다 대상 연령과 지원 범위, 본인 부담 여부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단,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조스터’ 등 이미 국내에서 허가·공급 중인 대상포진 생백신이 다수 지자체의 접종 지원사업에 활용되고 있어 백신의 도입 및 효과 검증 등에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진 않은 상황이다. 예방접종 확대를 위한 정책적 결정만 이뤄진다면 현장에서 적용까지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은 이미 갖춰져 있는 셈이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상포진 발병률이 증가하는 현실과 예방 효과의 장기 지속성을 고려할 때 지역 간 편차 문제는 고령층 건강 형평성 측면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대상포진은 이제 걸리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고령사회형 질환으로 재정의되고 있으므로 예방접종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기보단 공공보건 전략으로 끌어올리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