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겸 자민당 총재가 지난 3일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는 8일 실시되는 일본 중의원(하원) 총선거를 앞두고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의 승리가 유력시되고 있다. 현지 언론의 관심은 일본유신회를 포함한 연립여당이 얼마나 큰 격차로 승리를 거둘 것인지로 이동한 분위기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 계승자를 자처해온 다카이치 총리가 선거 이후 강경 보수 노선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5일까지 일본 주요 언론의 판세 분석을 보면 자민당·유신회 연립여당은 다카이치 총리 목표치인 과반을 크게 웃도는 의석수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자민당은 중의원 전체 의석 465석 중 278∼306석, 유신회는 25∼38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르면 자민당은 중의원 전체 의석 465석 가운데 단독 과반 달성이 유력시되며, 유신회와 합산할 경우 전체 3분의 2 수준인 310석 달성도 가능하다.
이는 선거 공시 전 자민당 의석(198석)에서 100석 가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현재 연립여당 의석은 회파(일종의 교섭단체) 기준으로 셈해 가까스로 과반이다. 같은 기간 산케이신문도 후지뉴스네트워크와 함께 여론조사해 판세를 분석한 결과 연립여당이 310석 이상 확보가 가능한 기세라고 전했다.
도쿄신문은 310석이 ‘자민당 대승’의 주요 기준점이라고 짚었다. 중의원 과반은 총리 지명, 법안 통과, 예산안 성립을 위해 필요한 숫자로 안정적 정권 운영을 위한 최소치로 여겨진다. 총리 지명 선거나 예산안의 경우 중의원이 우선권을 갖지만 법안은 현 연립여당이 소수인 참의원(상원)에서 부결될 수 있다. 반면 여당이 중의원 3분의 2 의석을 갖게될 경우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을 재가결해 강행 통과시키는 일이 가능해진다. 중의원에서 헌법개정안을 단독 발의할 수도 있다.
반면 제1야당 입헌민주당과 제3야당 공명당이 손잡고 만든 최대 야당 중도개혁연합은 아사히 조사에서 종전 양당 합산 의석수인 167석의 절반가량인 60~87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자 중도개혁연합 내에선 “패닉”이라는 등 위기감 섞인 반응이 잇따랐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도개혁연합 내 분열 조짐도 감지된다. 아사히가 도쿄대와 공동조사해 이날 공개한 입후보자 상대 조사 결과 공명당 출신 의원 60%는 자민당과 향후 연정 구성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겸 자민당 총재가 지난달 27일 도쿄에서 선거 유세 행사에 참석한 가운데 지지자들이 연설을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카이치 총리 개인의 인기가 이 같은 ‘압승’ 전망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30%대 안팎으로 정체된 자민당 지지율과 달리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취임 후 내내 60~70%대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다카이치 개인 지지 현상을 아이돌 팬덤 문화에 빗댄 ‘사나카츠’(다카이치 총리 애칭 사나와 활동을 뜻하는 일본어를 합친 말) 표현까지 등장했다.
여야 간 정책 경쟁은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전 제로’를 내세워 온 입헌민주당이 중도개혁연합 창당 후 조건부로 재가동 수용 입장을 밝히고, 자위권 행사 등 안보 이슈에서 ‘우클릭’ 행보를 보이면서 자민당과의 대립 구도가 흐려졌다. 반대로 야당이 즐겨 주장해 온 소비세 감세 카드는 다카이치 총리가 앞장서 꺼내 들면서 선거 쟁점이 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선거 기간 중에는 소비세 감세를 언급하지 않아 주목받고 있다. 감세가 선거 쟁점이 되는 것을 일단 ‘무력화’하고 야당 측에 비판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된 침묵이라고 아사히는 분석했다. 자민당이 외국인 규제 강화 등 보수 색채가 강한 정책을 내세운 것도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인 퍼스트’를 내세워 약진한 우익 참정당을 의식한 대응 전략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일본 공명당과 함께 중도개혁연합을 창당한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왼쪽)가 지난달 28일 요코하마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남은 변수로는 무당파층 표심의 향방과 입헌민주당·공명당 지지자의 결집이 거론된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달 28~29일 여론조사 결과 조사 대상 46%가 선거구에서, 36%가 비례대표에서 투표할 상대를 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중의원 해산부터 투·개표까지 16일밖에 되지 않는 ‘초단기 결전’이라 자신을 알리지 못한 후보자가 많고 중도개혁연합 창당 등 정치 구도 변화도 커 무당파층을 중심으로 투표처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많아 보인다고 마이니치는 분석했다. 일본공산당 등 야당의 ‘막판 결집’ 가능성도 있다.
예상대로 자민당이 압승할 경우 다카이치 총리는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하게 돼 차근차근 자신의 정책 과제를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에 자위대 명기, 방위비 증액, 3대 안보문서 조기 개정 등 우익 색채가 뚜렷한 안보 정책 추진이 우선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후 80여년 만에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비핵 3원칙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외국인 규제 강화, 국기 훼손죄 및 스파이방지법 제정 등 보수색 강한 사회 정책도 추진될 전망이다.
자민·유신 연정 합의에 따라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도 나타날 수 있으나 참의원에선 여당이 소수여서 실체화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카이치를 잘 아는 한 자민당 내 각료 경험자는 “헌법 개정을 실현하면 역사에 이름이 남는다”면서 “(다카이치) 총리는 가능하다면 손을 뻗칠 것”이라고 마이니치에 말했다.
5일 일본 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도쿄 총리 관저 앞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를 규탄하는 전단을 들고 있다. 거울 속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군복을 입은 듯한 제작 이미지가 바닥에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