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고삐 풀린 핵 경쟁
2010년 4월 8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왼쪽)과 드미트리 베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서명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에서 처음 등장한 핵무기는 인류에 절멸의 공포감을 안기는 한편, 이 ‘절대반지’를 손에 넣기 위한 경쟁을 유발했다. 미국에 이어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했고 1960년대까지 영국·프랑스·중국이 핵보유국이 됐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핵전쟁 위협이 최고조에 달하자 인류는 핵무기 통제로 방향을 선회했다. 1972년 5월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소련의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이 모스크바에서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에 서명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의 보유 수를 명시하고, 그걸 넘지 않도록 하자는 약속이었다.
1980년대는 핵동결을 넘어 ‘핵군축’으로 나아갔다. 1987년 12월 미·소 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체결돼 사거리 500~5500㎞ 지상발사 탄도·순항 미사일 2692기가 1991년까지 폐기됐다. 1991년 7월에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체결돼 핵투발 수단과 핵탄두의 상한선을 각각 1600기·6000기로 감축하기로 했다. 2010년 3월엔 오바마 미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과거 감축 내용을 모두 승계하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에 서명하고, 양국이 배치한 ICBM·SLBM·전략폭격기에 탑재할 핵탄두 수를 총 1550기로 제한했다. 뉴스타트는 2021년 2월 5년간 연장됐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전략경쟁에 따른 국제질서 지각변동으로 협정의 구속력이 약화됐다. 뉴스타트가 5일 정식 만료됨으로써 강대국간 핵무기 통제조약은 모두 사라졌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세계질서가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와중에 ‘핵무기 통제’ 체제까지 사라진 건 인류의 앞날을 불길하게 한다. 미국·중국·러시아가 인접 지역에 영향력을 구축하는 ‘세력권 질서’를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에 맞서 독일·일본 등에서 핵무장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핵무기가 사용된 지 80년이 지나면서 절대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퇴색한 반면 핵을 가지려는 욕망은 더 커졌다. 북한의 핵보유 묵인에서 보듯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도 힘을 잃었고, 1970~1980년대 핵통제 조약을 추동한 ‘반핵운동’조차 쇠퇴해 핵을 제어할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두려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