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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의 귀환이 던지는 경고

입력 2026.02.05 19:54

수정 2026.02.0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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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비용’의 귀환이 던지는 경고

나의 소비는 누군가에겐 소득이다. 그래서 소비는 미덕이다.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기에 내가 보유하고 있는 경제적 자원을 흥청망청 써버리면 안 된다. 현세에 소비하고, 미래에도 안정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자원을 비축해놓는 게 최선이다. 기업이 쓰는 비용도 누군가에겐 귀중한 소득이다. 인건비는 노동자들의 소득이고, 차입금에 대한 이자는 채권자들의 소득이며, 세금은 정부의 소득이다.

기업이 창출하는 수입에서 이를 위해 수반되는 모든 비용을 차감하고 남는 잉여가 주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손익계산서의 매출에서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 이자비용, 세금 등을 차감하고 남는 당기순이익은 온전히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몫이다. 재무상태표의 자기자본은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경제적 자원에서 주주들에게 귀속되는 몫을 보여준다. 그래서 투자자(주주)들은 당기순이익과 자기자본을 중시한다.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투자자들에게 가장 직관적인 가치평가 지표로 많이 사용되는 이유도 이들 항목이 당기순이익과 자기자본을 반영해 산정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훌륭한 기업들이지만, 어떤 면에서 이들의 활동은 전혀 다른 색깔로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비용을 많이 쓰고, 애플은 비용을 절대적으로 적게 쓴다. 2010~2024년 15 회계연도 동안 삼성은 매출의 87.8%를 비용으로 썼고, 애플은 76.3%만을 비용으로 썼다. 달리 말해 매출액 순이익률로 보면 삼성전자는 12.2%, 애플은 23.7%라는 것이다.

AI 기업, 천문학적 자본 투입 필요

삼성전자는 2010~2024년 15 회계연도 동안 421조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기업 활동에 수반되는 가장 큰 비용으로 볼 수 있는 설비투자로 496조원을 집행했다. 설비투자는 오랜 기간에 걸쳐 회계상 비용으로 인식(감가상각)되기 때문에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금액으로 설비투자를 했다고 해서 적자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애플은 최근 15 회계연도 동안 9610억달러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이 중 설비투자에 사용된 금액은 1520억달러에 불과했다. 삼성전자는 벌어들인 이익의 118%가 설비투자에 쓰였지만 애플은 16%에 그쳤다.

반면 기업의 성과를 주주들에게 배분하는 주주환원은 삼성전자보다 애플이 훨씬 왕성했다. 삼성전자는 15년간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의 30%인 125조원을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줬고, 애플은 당기순이익 누계액의 102%인 9830억달러를 주주환원에 썼다.

기업이 창출하는 부는 누군가에게 귀속된다. 비용은 기업의 외부자에게 돌아가고, 주주환원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주식투자는 이러한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기업이 벌어들인 과실을 주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배분하는 애플이 삼성전자보다 주식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PER은 10배를 밑도는 반면, 애플의 PER은 30배를 넘는다.

애플로 대표되는 미국 기업들의 높은 자본효율성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들 다수는 제조업이 아니라 플랫폼 기업이다. 애플과 구글, 메타, 아마존 등이 장악한 플랫폼은 공장이나 설비처럼 기업이 직접 구축한 자산이라기보다, 이미 사회 전반에 깔려 있던 인터넷 네트워크 위에 세워졌다. 막대한 고정투자를 반복하지 않고도 네트워크 효과를 누릴 수 있었고, 그 결과 높은 마진율과 주주 편향적인 이익 배분 구조가 가능했다.

이러한 주주 편향적인 이익 배분 구조는 정치·사회적 반작용을 불러일으켰다. 기업이 저비용으로 주주에게만 부를 몰아주는 구조가 심화될수록, 경제 주체 간 양극화가 커진다. 미국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기업의 자사주 매입에 대한 과세를 도입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소외된 ‘러스트벨트’의 분노를 등에 업고 제조업 부흥을 외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맥락이다. 기업이 번 돈을 주주들의 주머니에만 넣지 말고, 공장을 짓고 사람을 고용하는 ‘비용’의 영역으로 더 많이 되돌리라는 압박이다. 자본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생략되었던 사회적 분배의 기능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투자 대비 압도적 이익 창출해야

아이러니하게도 주식시장이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던 ‘가벼운 자본 구조’는 이제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만나며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대두되는 AI 버블론의 핵심은 단순히 주가가 비싸다는 공포에 있지 않다. 그동안 투자 없이 높은 마진을 누려왔던 미국 기업들이 이제는 생존을 위해 막대한 비용 지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구조적 변화가 본질이다. 오러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칩을 사들이고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며 전력을 확보하는 데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과거의 성장이 소프트웨어라는 무형의 자산 위에서 가볍게 이루어졌다면, AI 시대의 성장은 엄청난 양의 하드웨어와 에너지를 소모하는 ‘무거운 성장’으로 바뀌고 있다.

결국 AI 버블론의 실체는 ‘비용의 귀환’이다. 큰 투자 없이도 네트워크 효과에 기대어 고마진을 기록했던 빅테크들이 이제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비용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시장의 우려는 명확하다. 이토록 막대한 투자를 정당화할 만큼의 압도적인 이익을 미래에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 만약 AI가 가져다줄 생산성 혁명이 기업들이 쏟아붓는 자본비용을 상회하지 못한다면, 시장은 그동안 부여했던 높은 밸류에이션을 냉혹하게 거둬들일 것이다.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이 보여준 높은 이익률은 어쩌면 ‘투자 결핍’이 만들어낸 풍요였을지 모른다. 자본주의의 시계는 다시 기업이 사회와 산업 생태계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비용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기업의 외부자에겐 반가운 일이 될 수 있지만, 자본의 효율성만을 좇던 투자자들에게는 가혹한 시험대가 될 수도 있다. AI 버블 논란은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자본주의가 만들어온 가장 효율적인 성공 모델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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