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다. 너무 춥다. 처음 서울에 왔던 1984년, 영하 18도의 겨울밤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다시 학생이 되어 교사 시절 모은 돈 몇푼을 들여 운영하던 화실의 모든 물이 얼어붙어 마실 물조차 없던 겨울. 건물주가 화실에 더 이상 세를 주지 않겠다는 바람에 화실을 접은 뒤, 서교동 어느 차고 두어 군데 세를 살다 다시 근처 어느 집으로 세를 들어갔다.
내가 세 든 집은 전체가 셋집이었다. 집에는 두 가구가 세 들어 있었다. 중국집을 운영하는 40대로 보이는 부부와 남매로 이루어진 일가, 갓난아이가 있는 신혼부부 황씨네였다. 내가 세를 든 곳은 황씨네 두 방 중 작은 방이었다. 그러니까 집주인이 아닌 황씨네와 계약을 해서 세를 든 것이다. 이른바 겹세였다.
이사를 한 첫날 저녁 나는 황씨네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서울에 와서 몇군데 이사를 다녔지만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지방 도시에서는 셋방에 세를 들면 대개 밥 한 끼는 같이 먹자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서울에서는 없던 일이었다.
방에 들어가니 황씨의 아내는 검정 소반에 황씨와 내 밥을 겸상으로 차려 놓고 있었다. 갓 지은 뜨거운 하얀 쌀밥과 집에서 담은 김치, 돼지불고기, 기름을 발라 구운 김을 먹으며 속으로 나는 감동했다. 서울에서 낯선이에게서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이야기를 나눠보니 황씨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다. 경남 김해가 고향이고 일찍 서울로 와서 영등포 쪽에 있는 공장에서 선반공으로 10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다. 선반공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황씨의 손가락을 얼른 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선반에 대해 배울 때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중 절반은 손가락 하나쯤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모두 멀쩡했다. 작은 방은 원래 동생이 쓰던 곳인데 사고를 쳐서 지금은 큰집에 가 있어 비었노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동생은 을지로 제본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성격이 급해서 참을성이 없다고도 했다. 아마도 임금이나 처우와 관계된 문제인 듯했다.
그리고 내내 미안해했다. 뭐가 미안하냐고 묻자 부엌도 제대로 없고 난방도 안 되는 방을 세를 놔서 그렇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그 방은 난방은 연탄을 화덕 같은 곳에 피워 넣어야 하는 식이었다. 사실 그런 식으로는 난방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서 겨우 내내 냉방에서 살았다. 화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전기장판과 알라딘 중고 난로로 버티면서.
어쨌든 황씨의 저녁 대접과 태도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인데도 뭔가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그날 밥을 먹고 나서 그가 내게 동생이 제본했다며 책을 한 권 주었다. 문고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었다. 덕분에 시학을 읽게 되었다. 물론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듬해 여름에 황씨가 이사를 가면서 나도 그 방을 나왔다. 지금쯤은 황씨도 60대 후반이 되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날의 그 밥상은 내게 어디선가 밥상을 마주치면 늘 다시 떠오르는 따뜻한 밥 한 끼로 남아 있다. 참, 사진 속 밥상은 어느 식당에서 전시용으로 차려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