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송한 정답 앞에서 구르던 옛 버릇이 남아 볼펜은 떨어지는가. 혼자 있겠다며 구석으로 달아나는 저 물체. 줍고 일어서다가 책상 밑에 머리를 찧기도 한다. 짜증 난다고 말 없는 무정물을 쥐어박는 건 부질없다. 이런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나이가 가르쳐준 바이기도 하다. 말 않는 사물하고 싸우지 말자.
올해 들어 부쩍 인공지능(AI) 관련 소식이 요란하다. 특집 방송마다 AI가 도래할 세계를 그린다. 그간 개인마다 선택의 문제라고 여기며 오염이라도 되는 듯 피해왔는데, 이건 150년 전의 쇄국정책을 답습할 뿐이겠다. 피지컬 AI, 보편적 고소득, 몰트북 등 낯선 용어들이 이미 공기처럼 공중을 장악했다.
지나가는 일은 지나는 순간 팔다리를 거두고 기억의 창고에 뒤죽박죽 보관된다. 인간이 겪어낸 역사 또한 모두 그러하다. 작년 궁리에서 펴낸 <횡단 한국사>는 엄청난 가뭄이 몰아닥친 1901년부터 121년간 우리의 근현대사를 해마다 두 페이지에 걸쳐 일간지처럼 요약한 연표다. 특히 글 쓰는 분들한테 호응이 컸는데, 존경하는 한 소설가께서 “그때 그 시절, 당대의 느낌이 출렁출렁대서 좋더라”는 독후감을 전해주셨다.
더듬더듬 한문에 입문하고 노자 배울 때, 물(物)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 있었다. 나는 그간 물질, 물리, 물건 등의 사물과 내가 속한 사람을 철저히 구별하였다. 물론 사물에 대한 사람의 은근한 우위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 하지만 物에는 사람도 포함된다. 먼저 사람으로 번역한 뒤 문맥이 이상하면 사물로 번역해야 할 정도다. 물체에서 인물까지,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문이나 벽도 함부로 대하지 말자.
물질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물건이 인간처럼 행동하는 AI의 시대. 그 어떤 문 앞에 서 있는가. 여기에 <횡단 한국사>를 호출하는 건 저 책에는 아직 담지 못했지만 1895년에 단행된 ‘단발령’ 시절의 느낌이 출렁출렁하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시대적 조류 앞에서 신체의 일부를 잘라야 했던 그때 그 사람들의 심정과 겹쳐지는 것. 어찌될까, 이 시대는. 어찌하나, 사람들은. 기계한테 이기려 들지 말라? 눈 뜨고 코 베이듯 급기야 머리카락이 아니라 머리를 통째로,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