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국 연수 1년간 체험한 ‘아마존’은 신세계였다. 배송에 일주일은 너끈히 걸리던 한적한 시골마을도 아마존프라임에 가입하면 2~3일 만에 상품이 척척 배달됐다. 반품정책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사유가 뭐든 포장해 동네 우체국에 내려놓으면 모든 상품이 반품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아마존프라임을 통해 영화 <기생충>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유통의 천국답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귀국하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쿠팡이 있었다. 2주의 격리 기간 동안 쿠팡 덕을 많이 봤다. 무엇이든 신속하게 배달됐고, 반품도 쉬웠다. 와우멤버십에 가입하면 쿠팡플레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아마존과 너무나 닮은 꼴이길래 창업자가 누군가 찾아봤더니 김범석이라는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했다. 보나마나 아마존을 베껴온 것이겠지만 아무렴 어떠냐, 우리나라에도 쓸 만한 e커머스 하나가 생겼구나 싶었다.
그래서일 거다. 쿠팡이 갖은 구설에 올라도 웬만하면 모른 체했던 것은. 잇달아 물류·배송 노동자가 죽고, 입점업체에 대한 갑질 논란이 벌어졌지만 성장통이겠거니 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리스크에 노출되기 쉬운 법이니까. 와우멤버십 가격을 슬금슬금 올려도 그러려니 했다. 원래 구독서비스를 하는 기업들은 록인효과를 노리는 게 주된 상술이니까.
하지만 끝내 쿠팡을 끊었다. 쿠팡의 주요 미국 투자사들이 미국 정부에 공식 조사와 함께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조치를 검토해달라는 청원을 했다는 소식에 나의 이해심은 바닥났다. 이들은 청원에서 한국 정부를 친중·반미로 규정하고, 한국 정부가 알리·테무와 같은 중국 기업을 위해 ‘미국 기업’ 쿠팡에 차별적인 조치를 하고 있다는 극우스러운 프레임을 짰다. 글로벌 투자가의 논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고 천박했다. 지난 1월 사용자 수를 보면 토종 기업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는 전달 대비 10% 증가한 반면 중국의 알리(-1.3%)와 테무(-0.3%)는 감소했다(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 기준).
쿠팡은 정보 유출 사태 초기부터 대응이 이상했다. ‘중국인’ 전직 직원이라며 국적이 먼저 거론됐고, ‘유출’이 아니라 ‘노출’이라고도 했다. 2차 피해 우려에 대해서는 ‘경찰청’ 전수조사 결과 의심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정부기관을 끌어들였다. 관계부처가 대응 회의를 하는 동안 일방적으로 자체 조사 결과를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사건 축소와 책임 전가로 점철된 일련의 대응은 소비자에 대한 무시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지금, 쿠팡은 대놓고 미국 정·관계 뒤에 숨고 있다. 그 힘은 쿠팡이 쏟아부었다는 막대한 로비자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쿠팡은 5년간 1075만달러(약 160억원)를 미 국회와 행정부에 쏟아부었다. 쿠팡이 미국 소비자들 상대로도 이럴 수 있을까. 단언컨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경영학에 파우스트적 거래라는 용어가 있다. 지금 당장은 달콤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파멸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거래를 말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간 거래에서 유래됐다.
쿠팡 새벽배송을 이용했더니 연간 1조원 가까운 돈이 미국으로 건너가고, 로비자금이 되어 한국을 압박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쿠팡의 로비는 한·미관계를 이간질하고 한·미 동맹을 균열시킨다는 데서 더 고약하다. 쿠팡의 로비를 받은 미국 공화당 의원과 행정관료들은 갈수록 거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편리함의 유혹에 못 이겨 이용한 새벽배송이 악마가 되어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전형적인 파우스트적 거래다.
신토불이가 주목받는 시대는 아니다. 국가주의나 국수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대규모 정보 유출이 벌어지기 전 쿠팡을 미국 기업으로 생각한 소비자가 얼마나 있었을까. 국내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국내법을 준수하고, 국내 시장을 얼마나 존중하고 책임지느냐를 소비자들은 중시한다.
쿠팡을 영원히 끊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유통기업으로서 쿠팡이 가진 장점은 충분히 많고, 그 소비자 후생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행태가 계속된다면 다시 로그인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쿠팡의 대체재는 많다. 쿠팡은 구글이 아니다.
박병률 탐사기획에디터 겸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