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동인권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필 모양이다. 연초에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돌봄 노동자와 새벽배송 노동자의 인권 문제, 그리고 인공지능(AI)이 노동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를 업무계획에 포함하기로 논의했다고 한다. 노동에 대한 논의에서조차 사각지대에 위치한 소외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인공지능으로 인한 노동환경 변화의 맥락에서 노동인권을 심도 있게 고찰하겠다는 계획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다만 걱정은 지금의 인권위가 노동인권을 포함해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다양하고 절실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을 보듬을 수 있을 정도로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이다.
최근 몇년간 인권위에 대한 언론 보도는 위원장의 퇴행적 인권 인식과 인권침해적 언행, 그리고 몇몇 위원의 편향적이고 부적절한 처신으로 도배되었다. 기관 내부의 상황은 파행적 운영으로 점철되었으며 사회적 위상과 신뢰는 처참하게 훼손된 실정이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에서 부의장국까지 지낸 대한민국 인권위는 이제 등급 유지 결정을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로 국제적 평판이 추락했고 인권도 놓치고 권위도 상실한 채 문제 기관으로 전락했다. 이에 인권 분야 원로들과 연구자들, 그리고 심지어 인권위에 재직 중인 직원들은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으며, 지난 연말 인권의날 기념식장에 위원장이 발도 들이지 못한 초유의 사태는 위원장에 대한 불만과 반발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인권위의 몰락을 초래한 인사들에 대한 질책은 왜곡된 믿음과 직권 남용으로 기관 존립과 운영의 핵심 가치인 독립성을 무너뜨린 점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독립성은 인권위가 종합적인 인권전담기구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1993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파리원칙에서는 국가인권기구가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천명했다. 인권침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국가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인권위가 수행하기에, 그리고 정치적 다수의 입장을 좇는 선거 기반 권력기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야 비로소 사회 내 소수자의 각양각색 호소와 연대할 수 있기에 독립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독립 못지않게 기관 내부의 독립성도 중요한데, 내부의 위계나 질서에서 유래하는 일체의 압력에 대한 거부, 구체적으로는 조사 및 심의·의결의 독립이 그것이다. 진정 사건에 대한 조사나 논의 과정에서 위로부터의 압력이 있을 경우 인권 논의는 선별적으로 이루어지고 누구나의 경청될 권리(Right to be heard)는 침해될 수 있기에 기관 내부의 독립성 확보가 요구된다.
그런데 지금의 위원장이 이끄는 인권위에서는 스스로 독립성을 무너뜨린 참담한 사건들이 계속되어왔다. 대표적으로 인권위는 12·3 비상계엄 당시 인권침해에 대한 직권조사 및 의견표명의 건을 표결도 거치지 않고 부결한 반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권고 안건을 세 차례의 상정 끝에 가결했다. 국가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한 감시를 담당하는 기관이 정당한 사유 제시도 없이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려던 비상계엄 발동에는 침묵하며 오히려 계엄 주체인 국가권력을 비호해 외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스스로 포기했던 것이다.
또한 다양한 질병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던 위원장이,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조사관의 진정 사건 상정을 막아 개별 소위의 심의 의결 절차에 부적절하게 개입했다는 충격적인 내부고발은 인권위 내부 독립성의 근간이자 표지인 조사 업무·절차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파훼되었음을 보여준다.
출범 이후 정권 변동에 따라 지위의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인권위의 지금의 위기는 몇몇 인사의 타성과 무능이 아닌 확신과 적의에 의한 것이기에 전례가 없고 심히 위중하다. 그렇기에 기관의 파괴적 운영을 멈추고 독립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자구노력을 넘어 외부적 관여까지 고려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이는데, 조직의 리더십을 쇄신하고 작금의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발본색원의 과정이 우선순위에 놓일 것이다.
아울러 독립적인 합의제 기구에 부합하지 않게 그간 왜곡됐던 의사규칙과 운영 방식을 원복하고 조사·심의에서 부당하게 배제됐던 진정들에 대한 적극적이고 반성적인 재검토 역시 필요하다. 인권위가 낮은 문턱과 경청의 자세라는 고유의 미덕을 발현해 노동인권과 같은 사회적 요청에 진지하게 응답할 계획이라면 독립성 회복의 골든타임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박종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