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이조스 친트럼프 행보에
브랜드 가치 ‘뚝’…순식간 자멸
국제·지역 등 분야 크게 축소
우크라이나 특파원까지 해고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WP)가 4일(현지시간) 전체 기자 3분의 1 이상을 한꺼번에 해고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지 13년 만에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WP의 인적 자산과 브랜드 가치가 회복되기 어려울 만큼 나락에 떨어진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사측이 이날 WP 전체 직원의 약 30%를 해고했다면서, 뉴스룸 기자도 800명 중 300명 이상이 해고됐다고 보도했다. 맷 머리 WP 편집국장은 “회사가 오랫동안 너무 큰 경영 손실을 보았고, 우리는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온라인 검색 트래픽이 지난 3년간 거의 절반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WP는 국내 뉴스와 정치·경제, 건강 관련 기사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스포츠와 북 섹션은 완전히 폐지되고, 지역뉴스를 심층 보도하는 부서도 대거 감원된다. 이전까지 26곳에서 운영하던 해외 지국을 절반 이하인 12개로 줄이는 등 국제뉴스 분야도 크게 축소된다.
로이터통신은 중동을 포함해 유럽과 아시아 지역 특파원이 상당수 정리됐다고 전했다. 심지어 전쟁 지역에서 취재 중인 우크라이나 특파원까지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디애틀랜틱은 대대적 기자 해고를 150년 동안 미국 민주주의 체제의 기둥으로 성장해온 “워싱턴포스트의 죽음”이라고 표현했다.
베이조스는 2013년 그레이엄 가문으로부터 WP를 2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 “새로운 황금기”를 약속했다. 실제 WP는 베이조스가 인수한 후 3년 만에 웹사이트 트래픽을 두 배로 늘리고 흑자 전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WP의 구독자 수는 2020년 300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23년에는 7700만달러, 2024년에는 1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경쟁지인 NYT가 지난 10년 동안 요리 앱, 쇼핑 가이드, 게임 등 부가 서비스를 키우며 구독 기반을 확대해 현재 1300만명에 육박하는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WP는 신뢰도까지 타격을 입었다. 한때 신문 제호에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라는 문구까지 새겨 넣었던 베이조스가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 지지 사설을 철회하도록 강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과 1주일 만에 20만명의 구독자가 이탈한 것이다. 당시 사설 철회 압력은 베이조스가 운영하는 우주 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이 정부 사업 계약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당선 가능성이 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줄을 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WP 편집국장으로 재임할 당시 퓰리처상 수상 보도를 11건이나 지휘했던 마틴 배런은 “언론산업이 어지러울 정도로 급변하는 시기인 건 맞지만, WP의 문제는 최고위층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훨씬 더 악화했다”면서 “베이조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첨하려 했던 역겨운 행위는 그 자체로 추악한 오점을 남겼다. 순식간에 자멸한 브랜드의 전형”이라고 밝혔다.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베이조스의 ‘친트럼프’ 행보는 더욱 노골화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최근 WP 기자의 자택을 급습해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을 압수해 갔는데도 베이조스는 침묵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