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사실들): ‘핵 안전판’의 역사
선(맥락들): 왜 연장에 실패했을까?
면(관점들): 힘이 유일한 정의가 된 시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훈련 모습. 연합뉴스
전 세계 핵무기의 80% 이상을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 이 양국의 핵 전력을 제한해 온 조약 ‘뉴스타트(New START)’가 어제(5일) 만료됐습니다. 이는 냉전 이후 인류를 지탱해 온 핵 군축 체계가 사실상 공백 상태에 놓였음을 의미하는데요. 오늘 점선면은 미·러 핵무기 군축 협정의 궤적을 돌아보고, 뉴스타트의 종료가 가져올 국제 사회의 파장이 무엇인지 짚어볼게요.
점(사실들): ‘핵 안전판’의 역사
미국과 러시아 간 핵무기 통제 조약인 뉴스타트의 공식 명칭은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입니다. 그 뿌리는 1972년 체결된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냉전 시절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핵전쟁의 문턱까지 갔던 미국·소련(당시 러시아) 양국은 처음으로 핵무기를 제한하는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1991년 핵탄두를 대규모로 폐기하기로 합의한 ‘START I’을 체결하면서 핵 군축은 시대적 흐름이 되었고요.
2010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START I을 계승하는 새 조약에 서명하며 ‘뉴스타트’가 됩니다. 양국의 전략 핵탄두 수를 1550개 이하로 제한하고, 상호 현장 사찰을 통해 이를 투명하게 감시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15년 넘게 유지되어 온 이 안전판은 추가 연장 없이 2026년 2월5일 공식적으로 만료됩니다.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에서 1946년 7월 핵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선(맥락들): 왜 연장에 실패했을까?
왜 뉴스타트는 연장이 안 됐을까요?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3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러시아의 전략 시설을 사찰하려 한다”며 조약 참여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러시아가 현장 사찰을 거부하면서 조약은 사실상 사문화됐죠.
이런 대치 속에서 러시아는 지난해 9월 미국에 “1년 더 연장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전쟁 상황 속에서 군비 경쟁만은 피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됐습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8일 공개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만료되면 만료되는 것뿐이고, 나는 더 나은 합의를 할 것”이라며 연장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건 명분은 중국을 포함한 ‘삼자 협정’입니다. 하지만 이는 비현실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예요. 미국과학자연맹(FAS)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5459기)와 미국(5177기)이 전 세계 핵탄두의 86%를 보유한 반면, 중국은 약 600기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중국은 그동안 자국의 핵전력이 미·러에 비하면 한참 열세라는 점을 강조하며 핵 군축 협정 참여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해왔어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미국의 핵무력을 더욱 현대화하고 압도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시간 벌기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창길 기자
면(관점들): 힘이 유일한 정의가 된 시대
뉴스타트의 종료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냉전 이후 인류를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던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판’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이제 국제 사회는 감시와 통제가 불가능한 핵무기 개발 경쟁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당장 러시아도 뉴스타트 만료와 관련해 핵무기 증강에 나설 것을 예고했어요. 러시아 외교부는 성명에서 “잠재적인 추가 위협에 맞서 단호한 군사기술 조처를 할 준비가 여전히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중국과 영국, 프랑스 등 다른 핵보유국들 역시 군비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강대국들이 빗장을 풀어버린 상황에서 북한의 핵보유를 제재할 국제법적 명분도 희미해진다는 점도 우려스럽고요.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권력의 견제 장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도덕성이다. 나를 멈출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나에게 국제법은 필요 없다.” 강대국이 충돌할 때는 법이나 조약이 아니라 오직 국가의 ‘힘’만이 결정 요인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세계관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대목입니다.
지난 50년간 인류를 지탱해 온 것은 평화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함께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었습니다. 조약이라는 최소한의 규칙을 통해 서로를 감시하며 그 아슬아슬한 저울의 균형을 맞춰왔던 것이죠. 하지만 이 안전핀마저 뽑히면서, 이제 힘만이 국제 사회의 유일한 정의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의 슬로건입니다. 독자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슈를 점(사실), 선(맥락), 면(관점)으로 분석해 입체적으로 보여드립니다. 매일(월~금) 오전 7시 하루 10분 <점선면>을 읽으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세요.
<점선면>의 다른 뉴스레터가 궁금하시다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 https://buly.kr/AEzwP5M
매일 아침 '점선면'이
뉴스의 맥락과 관점을 정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