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은 선대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질환과 달리 후천적인 유전자 변이가 주요 발병 원인으로 작용한다. 게티이미지
백혈병·림프종·다발골수종 등 혈액암은 대부분 후천적인 유전자 변이가 발병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이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 때문이라고 잘못 인식하기 쉽다. 전문가들은 가족력보다는 노화나 생활습관을 비롯해 다양한 위험 요소에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혈액암은 혈액이나 림프계에 암세포가 생겨 정상적인 혈액세포 생성을 방해하는 질환이다. 주요 발병원인은 암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인데, 대부분 후천적인 세포 속 DNA의 변화로 발생한다. 서정호 경희대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후천적 암 유전자 변이를 유발하는 위험 요인은 다양하다”며 “강한 방사선 노출 등의 물리적 요인, 항암제나 벤젠 등의 유독 화학물질 노출, 흡연·음주·비만·운동부족 등의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 고령으로 인한 DNA 손상 축적과 유전자 복구 능력 감소 등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전병은 부모의 생식세포 단계에서 이미 존재하던 유전자 변이 때문에 가족 내에서 비슷한 질환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대표적인 암종은 ‘BRCA1·2’ 유전자 변이에 따른 유전성 유방암과 난소암 등을 들 수 있다. 그밖에 유전적 요인보다는 가족 구성원이 동일한 생활환경과 식습관을 공유한 탓에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위암이나 대장암 같은 암종도 있다.
그러나 혈액암은 이들 암종과 달리 선천적 유전 요인이나 가족력보다는 노화나 여러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정호 교수는 “혈액암은 유전자 이상과 관련은 있지만, 정자나 난자에 존재하는 유전자 변이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병과는 명확히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혈액암 중에서도 다발골수종은 환자 중 80% 이상이 노년층이어서 대표적인 노인 혈액암으로 불린다. 소아나 청년층에서도 상대적으로 발생 빈도가 높은 일부 백혈병·림프종과 달리, 다발골수종은 50대 이후부터 발생률이 급격히 증가해 80세 이상 고령층 환자가 진단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종양 덩어리가 발견되는 고형암과는 다르게 형태가 없이 전신을 순환하는 유형의 암인 혈액암은 혈액검사 수치의 변화를 자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혈액암의 대표적인 증상은 빈혈이다. 빈혈이라고 하면 흔히 어지럼증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기운이 없거나 머리가 맑지 않고 숨이 차는 증상이 더 흔하게 나타난다. 이외에도 원인 없는 발열과 체중 감소, 잦은 출혈이나 멍, 비장이 커지면서 생기는 복부의 불편감, 림프절이 만져지는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평소와 다르게 이런 증상이 지속된다면 간단한 혈액검사를 통해 혈색소·백혈구·혈소판 등의 수치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수치 이상이 발견되면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초기 혈액암을 포착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서정호 교수는 “혈액암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발견이 늦어질 수는 있지만, 치료 성적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며 “항암화학요법과 조혈모세포이식, 최신 면역세포치료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므로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하며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