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희망퇴직 절차 시작…페점 빠르게 늘어나
안수용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 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장(오른쪽)과 강우철 마트노조 위원장(가운데)이 지난 2월 3일 청와대 인근에서 홈플러스 사태 해결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단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간경향] 홈플러스가 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지 1년 가까이 됐다. 법정관리 기한은 오는 3월 3일까지. 법원 판단에 따라 최장 2026년 9월까지 연장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생은 계속 지연되고 폐점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미 점포 17곳이 문을 닫았고 2월에도 부산 감만, 울산 남구, 천안 등 7곳이 폐점한다. 세금과 공과금은 수개월째 체납 중이다. 납품 대금 지급이 밀리면서 거래처 공급이 끊겨 매대는 비어가고 있다. 직원들 급여는 미뤄지고 있고, 홈플러스 본사는 희망퇴직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 1년간 대주주 MBK가 책임 있는 자구책을 내놓지 않고 유통업 영업기반은 계속 악화하면서 마땅한 인수처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매각처가 나온다면 좋겠지만 사실상 답이 없는 상황이다”며 “오프라인 유통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며 전체 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홈플러스가 영업을 이어가더라도 매각 가능성을 판단할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지난 2월 3일 홈플러스 납품업체 900곳은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원회 정부합동민원센터를 찾아 청와대와 금융위원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홈플러스가 끝내 정상화를 이루지 못하고 파산할 경우 마지막까지 회생 가능성을 믿고 함께해온 수많은 중소 납품업체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지도부도 같은 날 청와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안수용 홈플러스 지부장은 “자녀 등록금과 부모님 요양비도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이 대한민국 유통 2위 기업 노동자들의 현실”이라며 정부의 대응을 촉구했다.
책임지지 않는 대주주
홈플러스는 지난해 11월 26일 마감된 인수 본입찰에 응찰한 업체가 없자 12월 29일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을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했다. 이 계획안은 부실 점포 정리와 유동성 확보를 우선하고, 이후 정상화된 사업부를 중심으로 다시 인수자를 찾겠다는 방향을 담고 있다. 회생계획안은 긴급운영자금(DIP) 3000억원 투입, 기업형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분리 매각, 부실 점포 41곳 정리, 인력 효율화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해당 회생계획안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들의 비판이 제기된다. 먼저 무분별한 폐점과 SSM 매각이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향후 매각 가능성을 더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주현 서비스연맹 조직국장은 “노조의 입장은 구조조정과 폐점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지속경영이 가능한 회생계획안이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지금의 계획안을 보면 MBK는 부동산 자산을 헐값에 팔아서 채무를 어느 정도 변제하고 손 털고 나가겠다는 거로 보인다. 이후 거점 매장 없이 시장에 남겨진 홈플러스의 지속경영이 가능하겠나”라고 말했다.
특히 대주주 MBK의 실질적인 자구 노력이 부재해 회생계획안이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홈플러스는 DIP 3000억원을 MBK파트너스(대주주), 메리츠금융지주(최대 채권자), 산업은행이 각각 1000억원씩 분담하는 방식으로 제시했다. DIP 자금은 당장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고 회생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핵심 수단으로 평가된다. 지난 1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홈플러스 이대로 문 닫게 할 것인가? 긴급좌담회’에서 홈플러스TF 단장 유동수 민주당 의원은 “홈플러스는 월 고정비만 1000억원이고 월간 운영 적자가 500억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1000억원을 내겠다는 건 사실상 의지가 없는 것이다”라며 “MBK가 인수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운영이 가능하도록 선제적으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메리츠증권지주는 DIP 대출 지원에 회의적인 상황으로 알려졌으며 산업은행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홈플러스가 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남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급여와 납품대금 지급도 어려운 상황에서 뒤늦게 DIP 금융이 들어온다 해도 영업 기반과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라며 “정치권은 MBK의 자구 노력을 전제로 지원을 이야기하지만 MBK의 의지가 없는 게 빤히 보이는 상황이다. MBK의 개과천선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청산은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시장에만 맡길 수 있나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공적 구조조정을 통해 인수 여건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회생계획안이 제출되면서 관련 논의는 멈춘 상태이다. 당시 민주당은 유암코(UAMCO·연합자산관리) 등 공적 구조조정 기관이 불투명한 채무 구조를 먼저 정리하고 이후 전문 유통경영이 가능한 기업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회생계획안이 제출되어 유암코 인수는 어려워졌다고 보고 회생계획안 채택·보완·부결 등의 문제가 남은 상황이다. 다만 회생계획안에 대해 신뢰를 못하기 때문에 진척이 안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무엇보다 MBK가 파견한 경영진 2명이 회생절차에서 관리인을 맡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관리인은 회생 중 회사의 실질적 최고 의사결정자로 회생계획안 작성과 자산 실사를 주도하는 지위다. 홈플러스 사태가 MBK의 무책임한 자산 매각 등에 기인한 만큼 대주주 측 인사가 관리인을 맡아 회생을 주도할 경우 객관성과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김 의원은 “유암코나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 공적 금융기관 출신의 제 3자 관리인을 선임해 자산 실사와 회생계획안을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신뢰가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아직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폐점과 관련해 공적 개입 여부 의견을 묻자 김병환 당시 금융위원장은 “점포를 매각하지 말라고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만 답변했다.
그러나 청산 시 고용과 지역 상권에 큰 충격이 우려되는 만큼 정부의 전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남주 변호사는 “직접 고용 2만명과 입점업체 등 간접 고용 10만명의 일자리 상실이 불가피하다. 만약 조선소처럼 특정 지역에 집중된 사업이었다면 정치권이 더 적극적으로 나섰을 텐데, 점포가 전국에 분산된 탓에 대응이 미온적이다”라며 “홈플러스 매출 자체는 전체 GDP 대비 1% 미만이라도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커 파산으로 갈 경우 서민경제는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번 사안에 대해 별다른 대응 구상이 없어 보인다. 금융위, 기재부, 유암코 등의 역할 분담을 위에서 설계해야 하지만 그런 틀이 잡혀 있는 것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위평량 위평량경제사회연구소장은 “청산 방향으로 가게 되면 MBK는 책임을 면하고 피해는 노동자와 입점업체들에게 돌아가 문제가 심각해진다”라며 “정부는 현행법 제도를 근거로 시장에서의 해결을 우선하고 있지만 이대로 둘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어 기존 틀을 넘어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