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로 향하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의 얼굴을 원숭이와 합성한 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려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공화당에서도 비판이 쏟아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영상을 삭제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올려 논란이 된 영상을 약 12시간 만에 삭제했다. 62초 분량의 이 영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의혹을 되풀이하는 내용으로, 끝부분에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를 원숭이로 묘사한 장면이 포함됐다. 배경음악으로는 영화 <라이언 킹> 삽입곡이 사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나는 끝까지 보지 않았다. 끝부분에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어떤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며 “나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첫 부분만 본 뒤) 나는 그걸 (SNS 계정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넘겼는데, 아무도 영상 뒷부분은 보지 않고 게시한 것 같다”며 “우린 그걸 알자마자 내렸다”고 덧붙였다. 사과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는 “아니다. 나는 실수하지 않았다”며 “나는 시작 부분(부정선거 주장)이 마음에 들었고 그걸 보고 그냥 전달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SNS 트루스소셜에 게시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 얼굴을 원숭이와 합성한 영상. 트루스소셜 갈무리
백악관도 해당 영상이 공유된 것은 계정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의 실수”였다고 해명을 번복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논란이 불거진 직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정글의 왕으로, 민주당원들을 라이언 킹 등장인물로 묘사한 인터넷 밈”이라며 “가짜 분노를 그만두라”고 일축했다. 대응 방식의 온도 차를 고려하면 실제로 직원 실수였다기보다, 인종차별이라는 거센 비판 여론을 의식한 뒤 내놓은 ‘후퇴용 명분’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프리 소넌펠드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트럼프가 의도적으로 논란을 만들어내고,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논란이 된 게시물은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지는 시기에 고물가, 이민정책 등 현안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렸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해당 영상은 유색인종, 여성, 이민자에 대한 비하적 발언을 일삼아온 트럼프의 과거 행적과 일맥상통한다”며 “오랫동안 유색인종을 비하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대통령으로서 이번 게시물을 삭제한 건 이례적 후퇴”라고 평가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정부가 급격하게 입장을 바꾸는 과정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점에도 주목했다. 공화당 흑인 상원의원인 팀 스콧은 “가짜이길 기도한다. 백악관에서 나온 것 중 가장 인종차별적인 것”이라며 “대통령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 밖에도 “라이언 킹 밈이라 해도 상식적인 사람은 인종차별적 맥락을 알아챌 것”(피트 리케츠 상원의원), “믿기 힘들 정도로 모욕적”(마이크 롤러 하원의원)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공화당 전략가인 더그 헤이는 “백악관은 공화당 의원들이 전례 없는 방식으로 직접 반발하는 것을 보고 이번 사태가 얼마나 엄청난 실수였는지 깨달았다”고 NYT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체포돼 죄수복을 입고 철창에 갇힌 인공지능(AI) 생성 영상을 트루스소셜에 올려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는 오랫동안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출생지 의혹’을 제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