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고 구체적 실행 방안을 담은 시행령까지 입법예고됐다. 느낌표를 덧붙인 것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기 때문이다.
‘전공의 처단’이 담긴 계엄포고령으로 시작된 불법 내란의 종식과 더불어 의·정 갈등은 일단락되었지만, 기-승-전 의사인력 문제로 귀결되는 지역의료 상황은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역의사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여러 대안 중 하나일 뿐이며, 해결해야 할 다음 과제를 남긴다.
이렇게 선발한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 지역의사로 길러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들이 졸업 후 지역에 오래도록 머무르며 자신의 삶과 지역사회의 안녕을 함께 꾸려갈 수 있을까? 지금쯤이면 이런 ‘고상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마땅하겠지만, 그럴 리가 있나. TV 뉴스에서 지역의사제 소식에 등장한 인터뷰 주인공은 입시 컨설턴트였다. 모든 문제를 입시와 부동산으로 귀결시키는 K문화의 저력이다.
의료 문제 해결 위한 ‘지역의사제’
벌써부터 입시와 부동산으로 귀결
지역사회와 함께할 의사 만들려면
기존 의대 교육체계부터 달라져야
당장 2027학년도부터 지역 의과대학은 신입생의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뽑을 수 있게 됐다. 이 전형 입학생의 일정 비율은 해당 의대 소재지나 인접 지역의 중고교 졸업자로 선발해야 한다. 입법예고된 시행령에는 전형이 적용되는 지역과 의대, 고등학교 소재지 명단이 제시되어 있다. 이 지역들의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는 비수도권 소재 중학교를 졸업해야 하며, 경기와 인천 소재 의과대학 전형자는 고등학교와 동일한 소재지의 중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단서도 달려 있다.
이 대목에서 보건의료 정책은 입시제도로 변신했다. 일부 언론은 국민참여입법센터의 의견글을 토대로 ‘한 학생’ ‘한 학부모’의 우려와 불만을 전했다. 수도권 학생도 사명감을 가지고 지역의사를 할 수 있는데 기회 자체를 박탈한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 우리 지역도 의료자원이 부족한데 제도의 적용 지역이 되지 못한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대체로 수도권 거주자들의 목소리다.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에서 부잣집 아들 ‘상훈’은 가난을 ‘체험’하고 인생의 ‘경험’으로 소비한다. 삶으로서 가난을 견뎌내고 있던 주인공 ‘나’에게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 의료취약지, 불평등이라는 절박한 문제마저 뺏어와 지위 세습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에 이 소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지역의사제는 지역 의료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의료정책이지, 경제력과 기획력을 겸비한 이들을 위한 기회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앞서 이야기한 ‘고상한’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 법은 지역의사제로 선발된 학생들이 공공의료 관련 과정, 지역 내 실습 과정 등을 추가로 이수하도록 했다. 현재 대부분의 의대 교과과정은 임상의학으로 채워져 있으며 실습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별도의 추가 교육만으로 지역의사를 길러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대 재직 시절을 돌아보면, ‘지역사회의학’ ‘환자·의사·사회’ 같은 ‘비주류, 비임상’ 과목은 교수에게나 학생에게나 시련이었다. 독서토론, 다양한 특강, 에세이, 지역사회 실습 같은 프로그램들은, 준비하는 사람의 수고가 무색하게 학생들의 임상교과 공부 방해꾼이자 시간 낭비 요인이었다.
의사 직업윤리에 대한 책에서 한 챕터를 골라 읽고 (한 권 전체가 아니라!) 간략한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했다가 학생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임상과목 시험 준비 시간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초청한 외부 강사에게 미안했던 적도 여러 차례. 다른 과목 자료를 꺼내놓고 공부하거나, 엎드려 자는 학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만 특별히 이상했던 것도 아니다. 나도 다른 의대에 특강을 가면 비슷한 강의실 풍경, 그리고 난처해하는 초대자의 얼굴과 마주하고는 했다.
의대생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성실하게 실천하여 이곳에 당도한 모범생들 아닌가. 현재의 교과목 구성, 교육 방식, 평가체계, 무엇보다 사회적 규범은 그대로인 채, 소수의 지역의사제 학생들에게만 특별한 교육과정을 통해 정신무장(?)을 시킨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사회가 기대하는 의사를 길러내기 위해 의대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료 안팎을 넘나드는 논의가 시급하다. 지역의료 상황은 시시각각 악화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고민을 유보할 수 있는 사치가 허락되지 않았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