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재택근무 노동자를 대리해 퇴직금 청구 소송을 했다. 인터넷 게시물을 검열하는 사람이었는데 출퇴근 시간에 맞춰 인트라넷에 접속했고, 메신저를 통해 관리자의 지휘와 감독을 받았다. 최저임금을 받았고, 매주 고정된 휴일이 있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일을 했건만 회사는 퇴직금을 주지 않았다. 집에서 일을 하므로 근로자가 아니고, 근로자가 아니니 퇴직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까지 갔지만 모두 패소했다.
판결이 나고 몇년 후 코로나19가 우리 사회를 휩쓸었다. 많은 직장에 재택근무가 도입됐다. 판사들도 재판이 없는 날에는 원격근무 방식으로 일을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재택근무 노동자를 대리해 소송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결과가 정반대였다. 법원은, 재택근무자도 근로자이고 회사가 한 행위는 계약해지가 아니라 부당해고라고 했다. 두 사건 간에 사실의 차이는 없었다. 그런데도 다른 판결이 난 이유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근무가 가능하다는 것을 판사가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10년 만의 변화였다.
기술 발전 덕분에 회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게 됐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애플리케이션과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어느 때라도 근무가 가능한 세상이다. 임금체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호봉제 자리에는 성과급제, 연봉제가 들어섰다. 노동자 통제 방식은 더욱 노련해졌다. 회사의 지시는 업무 매뉴얼로, 노무 관리는 알고리즘으로 대체됐다. 그러나 사업주가 근무조건을 결정하고, 노동자는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사업주에게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생활하는 사람, 그래서 사업주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 근로기준법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법원이 정한 근로자 판단 기준을 통과한 사람만이 법을 적용받는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조금씩 변하고는 있다지만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현장의 노동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렵고 복잡하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노동법 밖에 놓여 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고용노동부가 패키지 법안을 내놨다. 하나는 근로자 추정 규정을 둔 근로기준법 등 개정안이고, 다른 하나는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안이다. 그런데 전자는 소송에서만 노무제공자를 근로자로 추정한다. 직장갑질119 오혜민 노무사의 말을 빌리면, “전체 노동 분쟁의 96.8%가 법원이 아닌 노동위원회 단계에서 종결되는데 정작 이 단계에서 근로자 추정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추정에 불과하기에 법원이 안 바뀌면 쓸모없는 셈이다. 후자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나열했지만 그 권리를 보호할 장치는 사업주가 안 받아도 그만인 분쟁조정과 표준계약서 사용 권고밖에 없다. 기본법에 어울리지 않는 조문을 둔 이유가 이 정도 수준에서 만족하라는 의도가 아니길 빈다.
‘보호’라고 이름 붙은 비정규직법들이 실제로는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않고, 예술인복지법이라는 미명으로 예술인을 노동법 밖으로 밀어내버린 역사가 있다. 생색만 내고 끝내기엔 절박한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