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사법농단’ 판결문을 읽으면 눈물이 난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사법부가 알량한 재판 권한과 사법행정 권한을 손에 쥐고 조직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한 재판 당사자와 판사를 어떻게 대했는지 차분히 읽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받쳐 오른다.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2심 재판에서 일부 재판개입 혐의에 대하여 유죄가 선고되었다. 1심 재판부는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개입했으므로 무죄’라는 논리를 취했는데,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사법행정의 탈을 쓰고 재판에 개입한 행위는 유죄’라고 반박한 것으로서 유의미하다. ‘월권이므로 남용이 아니어서 직권남용죄 무죄’의 논리에 의하면 재판에 개입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 부조리를 1심 재판부는 입법 미비로 보았고 2심 재판부는 법 해석으로 해결한 셈이다.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물론 사법농단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든 무죄가 선고되든 그것은 결정적이지 않다. 재판개입은 일어났는데 그게 월권이라 무죄든 남용이라 유죄든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형식적 법 논리보다는 재판개입이 위헌적이고 위법하며 부당하다는 사회적 확신과 재발을 막기 위한 실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자꾸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이 무죄인지 유죄인지만 기억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헌적이거나 위법하거나 부당한 일들이 꼭 현행법상 형사범죄에 해당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재판에서 대부분 무죄가 선고되었으니 사법농단은 실체가 없고 오히려 무리한 수사 및 기소를 반성해야 한다고 쉽게 말하기 전에 한 번씩만 살펴봐 주길 바란다. 재판에서 어떠한 사실관계가 인정되었는지, 이것이 범죄가 아니라고 하여 괜찮은 것인지,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 사법부를 가질 것인지 말이다. 이를 위해 2심에서 무죄로 판단되었으나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이는 사안들을 소개한다.
하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에서 피해자들이 패소했으나 2012년 대법원은 피해자 승소로 판단했다(원심 파기환송). 사건을 돌려받은 고등법원도 피해자 승소로 판결을 선고했고, 이에 일본 기업이 상고하여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갔다. 그 상황에서 일본 기업의 대리인은 2012년 대법원의 판단을 뒤집고 일본 기업 승소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일본 기업에 유리한 대한민국 외교부 의견서를 재판에 현출시키고 전원합의체 재판을 여는 대응 전략을 추진했다. 한편, 대법원은 외교부가 강제징용 재판에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제3자 의견제출제도를 만들었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외교부 및 일본 기업 대리인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외교부로 하여금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독촉했고 일본 기업 대리인에게는 외교부 의견서 제출로 인해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한) 전원합의체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장은 일본 기업 대리인과 이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 모든 상황을 일본 기업은 보고받아 알고 있었는데, 피해자들은 수사로 밝혀지기 전까지 철저히 배제된 채 재판이 진행되기만을 기다렸다. 참고로 모든 국민은 공정하고 독립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둘, 판사들은 2년에서 4년마다 근무 법원을 변경하고, 5년에서 10년 주기로 고등법원 권역별 이동을 한다. 같은 권역 내에서 법원을 이동할 때에는 출퇴근 시간이 변경되는 정도의 부담만 안게 되지만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동하거나 경상권에서 전라권으로 이동할 경우에는 생활근거지를 변경하게 되므로 가족이 함께 있지 못하게 되거나 집을 새로 구해야 하는 등의 큰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판사들의 전보인사는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재량에 속하지만, 위와 같은 중대한 생활상 유불리가 수반되는 점을 감안하여 재량준칙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을 비판한 판사들을 ‘물의야기법관’으로 분류했고, 이를 평정권자인 법원장에게 전달했으며, 일부에 대해선 재량준칙에 어긋나는 강등 전보인사를 했다.
한 판사는 아픈 부모를 간병하기 위해 원주지원을 희망했는데, 재량준칙에 의할 때 자신이 갈 수 있는 임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대구로 발령받았다. 물의야기법관으로 분류되어 강등된 것이다. 그간 물의야기법관으로 분류되는 기준이나 그에 따른 불이익이 논의된 적은 없었다. 까고 보니 사법행정을 비판하려면 원주 희망하고 대구 가는 정도는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