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익숙해진 시대다. 주택의 과잉 금융화와 상품화가 가속화되면서, 소득 증가보다 부동산 자산의 증가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던 경험은 한 세대를 관통하는 기억으로 남았다. 하이닉스에 다니며 천문학적인 성과급을 받은 친구조차 부모로부터 부동산을 물려받지 못한 계층이라면, 서울 집값이 부담스럽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기이한 나라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 속에 양도세 중과 유예 논쟁을 필두로 부동산이 온 사회의 이슈로 재점화기도 했다.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강남의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비롯되는 ‘불안’의 감정은 대다수 사람들의 생애주기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고액의 월세로 인해 통장에 돈은 쌓이지 않고, 전세로 옮겨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늘 마음을 졸인다. 집을 사려 하면 지금 가격이 정점은 아닐지 걱정하게 되고, 어렵게 집주인이 되어도 금리와 집값을 둘러싼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만성적인 불안 속에서 전 국민은 어느새 부동산 전문가가 되었다. 비극적이지만 전세사기를 겪으며, 투기에 기반한 부동산 금융화가 어떻게 ‘폭탄 돌리기’로 이어져 왔는지도 경험했다. 문제는 고가 아파트 가격에만 시선이 쏠린 나머지, 저성장으로 정체된 지역에 대해서는 정부도 시장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기 유인이 사라진 지역은 그저 방치되고 있지만, 주택 진입 장벽이 이미 높아진 상황에서, 그곳의 세입자 및 자가소유자 역시 주거 불안은 마찬가지로 남아 있다.
이쯤 되면 ‘리그’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일부 계층의 자산 증식 행위를 관리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현 정부의 강경한 드라이브나 공공택지를 활용한 신속한 공급 방안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모델은 ‘효용 가치’와 ‘무배당’의 원리에서 출발할 수 있다. 쫓겨날 걱정만 없다면, 집을 통해 자산을 증식하지 않더라도 적정한 가격의 주택에 안정적으로 거주하고자 하는 수요는 충분하다. 이러한 수요를 대상으로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 주거비를 분담한다면, 전세금 수준의 부담으로 주거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다만 공적 기금이 투입되는 만큼, 주택을 통한 투자 이익은 실현할 수 없도록 설계하고, 대신 이주 시에는 투입한 목돈만큼을 보장함으로써 가격 하락에 대한 불안을 없애면 된다. 이는 자가소유에 준하는 안정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전세 수요를 흡수해 전세사기 위험을 낮추고, 가계부채 문제를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높은 수익률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노후 저층주거지 정비로의 확장 가능성 역시 열려 있다. 물론 임대료 시장의 통제 및 양성화를 통해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세입자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대규모 재개발을 위해 막대한 투기 이익을 보장하고, 부실화된 PF는 정부가 보전하며, 전세 위기 국면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규모 보증 부담을 떠안는 구조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는 없다. 지난 방식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반복적으로 다음 세대에 전가만 할 뿐이다. 지방 불균형과 전세사기, 인구구조 변화라는 복합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해법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설계된 주택 모델을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