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곽 전 의원 측 ‘이중기소’ 주장 받아들여
노웅래 사건 땐 ‘위법 수집 증거’로 무죄 선고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 이익’ 기본 원칙이지만
“왜 유력 인사들 재판서만 보장되나” 지적도
‘50억 클럽’ 의혹과 관련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50억원(세후 25억원)을 지급받고, 이를 화천대유에서 근무했던 아들의 성과급처럼 꾸민 혐의를 받는 곽상도 국민의힘 전 의원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곽 전 의원은 공소기각을 선고받았다. 같은날 곽 전 의원의 아들은 무죄 판단을 받았다. 성동훈 기자
법원이 ‘화천대유 뇌물 사건’과 관련해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1심에서 ‘공소기각’을 내리며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곽 전 의원 측은 검찰이 50억원 뇌물 수수·공여 혐의로 먼저 기소한 뒤 무죄가 나오자 ‘이중기소’를 했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최근 법원은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사건’에 연루된 노웅래 전 의원에 대해서도 검찰이 확보한 증거능력을 엄격히 따져 무죄를 선고하고, 김건희 특별검사팀의 기소 사건 일부에 대해선 수사 대상이 아니라며 잇따라 공소기각하기도 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을 따른 것이지만, 유독 정치인 등 유력 인사들 재판에서만 피고인 권익이 최대로 보장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오세용)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 전 의원과 대장동 개발사업 민간업자 김만배씨에게 지난 6일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곽 전 의원 아들의 뇌물 등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공소기각은 검찰의 기소 절차가 법을 위반했거나 이중기소인 경우, 피고인이 사망했을 때 등에 내려진다. 재판부는 “검사는 별도 공소 제기를 통해 1심 판단을 사실상 두 번 받아서 결과를 뒤집고자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법원에서는 이처럼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황 보다 검찰의 수사 관행을 지적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노웅래 전 의원 사건에서도 사업가에게 뇌물과 정치자금 등 6000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가 선고됐는데, 법원은 유무죄를 가르는 핵심 증거였던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녹취록이 위법 수집된 증거라고 판단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1심 선고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공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김 여사가 범죄를 알고 있었을 거란 의심은 들지만, 공동정범으로서 주가조작과 이익 배분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충분히 증명되지 않아 유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방조 혐의는 특검이 기소하지 않아 아예 판단하지 않았다.
특검의 기소가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별건 수사를 한 것이라며 법원이 공소기각해 제동을 거는 경우도 잇따랐다.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을 수사하다가 국토교통부 서기관의 별도 뇌물 혐의를 인지하고 기소한 사건을 공소기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통일교 정교유착 의혹과 관련해서도 법원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한학자 총재의 원정도박 관련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는 혐의는 기소부터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을 맡은 이광철 변호사는 SNS에 “공소권 남용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례가 단 두건으로 거의 사문화된 판결이다. 그런데 화천대유 사건으로 50억원 퇴직금을 아들이 받게 한 사안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그만큼 위법한가”라고 썼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무죄와 관련해서도 “(주가조작) 선수들의 위법이 확인됐는데 돈을 대고 그 이익을 공유한 전주에게 공모를 부인한 사안은 처음 들었다”며 “법원이 국민들로부터 불신받는 이유는 이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쏟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인 정지웅 변호사도 “‘800원 횡령 버스기사’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단하면서 유력 인사들의 사건에선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선고를 내리는 것처럼 보이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법 불신이 커지는 것”이라며 “형사사법의 절차적 논리에만 매몰되면 실체적 진실을 판단하고 처벌하는 사법기관의 역할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반면 한 부장판사는 “판사는 기본적으로 ‘불고불리 원칙’에 따라 판단한다. 특정 사람에게 무죄를 주기 위해 없는 원칙을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불고불리 원칙이란 ‘법원은 검사가 기소한 범죄 사실의 범위 안에서만 판단할 수 있으며, 검사의 공소 제기가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법원이 무조건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는 없다. 이를 ‘권력에 굴복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고 했다.
한편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와 김상민 전 검사에 대한 선고는 9일 나온다. 이 밖에 도이치 사건과 관련한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별건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조은석 내란 특검 역시 수사 과정에서 내란·외환 의혹과는 직접 관련 없는 윤재순 전 대통령실 총무비서관과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의 인사청탁 비리를 인지해 기소했다. 이들도 계속해서 별건 기소라며 반발한 만큼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