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겸 자민당 대표가 중의원 총선이 치러진 8일 일본 도쿄 자민당 본부 선거상황실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하원) 총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개헌 발의석을 넘는 316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연립여당인 일본 유신회의 의석(36석)을 합치면 352석으로 전체 의석의 4분의 3에 달한다.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한 보수 여당의 등장이다. 자민당의 이번 대승은 첫 여성 총리이자 비세습 정치인인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적인 인기에 힘입은 바 컸다. 중일 갈등에 따른 안정희구 심리가 커진 가운데 다카이치가 비리와 세습으로 얼룩진 자민당을 개혁할 적임자라는 평가가 보수층 결집을 넘어 무당층까지 선거에 나오도록 하면서 자민당에 표가 몰린 것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초거대 여당을 배경으로 각종 법안 및 예산안을 단독 처리할 수 있게 됐고, 참의원 부결 법안도 재의결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능을 갖게 됐다. 총선 승리 직후 다카이치는 개헌 추진 의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무기 수출의 빗장을 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핵을 보유하지도, 제조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 ‘비핵 3원칙’ 중 ‘반입 금지’ 조항도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애초 자민당 공약과 일본유신회와의 연정 합의에는 전후 80년 국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 ‘보통국가’로 나아가도록 하는 내용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도 지적하듯이 총선 압승이 이런 과제들을 독단으로 추진해도 좋다는 ‘백지위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국제질서가 강대국들에 의한 ‘세력권 질서’로 재편될 가능성·불안정성이 커지고 있으니 일본도 ‘비무장 평화국가’ 시기의 원칙들을 서둘러 재손질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에 대한 진지한 사죄와 반성은커녕 과거사를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 경향마저 보이는 일본이 이런 평화주의 강령을 폐기하려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풀지 않은 채 ‘보통국가’로 복귀하는 것을 주변국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점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미·중 대결이 제도화되고, 동맹국에 안보 책임을 떠넘기려는 미국의 대외전략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한·일 양국 간 협력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협력 의지를 다진 것도 양국이 처한 사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만들어진 협력 기조가 일본 내 정치지형 변화로 인해 퇴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본의 권력 집중이 주변국에 대한 피해를 초래했던 과거에 비춰본다면 다카이치 내각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과제는 주변국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