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선거 연령을 만 16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얼핏 청소년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진보적 수사처럼 보인다. 그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세계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있으며 사회적 판단력이 성인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얄팍한 설계도가 의심된다. 최근 10대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능력주의에 기반한 이른바 우경화 흐름을 표로 포섭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중잣대도 문제다. 장 대표는 선거권 연령 하향을 주장하면서 ‘주입식 정치 교육 금지 가이드라인’ 법제화를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불과 몇달 전에는 교사의 정치 활동 보장을 두고 “정치 편향 교육으로 교실이 망가질 것”이라며 반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교사의 정치 활동을 막는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교사가 정치적 논쟁의 장을 열 수 없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투표권만 주는 것은 수영을 가르치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번 국민의힘의 제안은 최근 10~20대 남성들의 극우화를 정략적으로 포섭해 갈라치기 하려는 ‘세대 포위론’의 변주에 가깝다. 국민의힘은 이들의 기성 진보 세력에 대한 혐오 정서를 활용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청소년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불만을 투표장으로 배송하겠다는 속내다. 10대들이 온라인상의 극단 논리에 쉽게 경도되는 이유는 학교나 가정에서 이들의 불만을 들어주고 민주적 언어로 소통할 사람들이 없어서다. 결국 교육과 대화의 부재 문제다. 정치적 중립에 묶여 있는 교사와 소통의 벽이 높은 부모 세대의 공백을 극우적 유튜브와 커뮤니티 알고리즘이 메운 결과다. 국민의힘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토론을 통해 학생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기회는 박탈됐고 그 빈자리에 국민의힘에 유리한 극단 여론이 채워지는 결과를 낳았다.
더구나 국민의힘에는 극우화의 원죄도 있다. 과거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소수 문화로 치부되던 혐오 표현이나 극단적 능력주의 담론을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정당이 정치적 수사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국민의힘은 보수의 가치를 능력주의와 혐오로 납작하게 만들어버렸다. 특정 집단을 조롱하거나 배제하는 언어가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고 할당제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내 몫을 뺏는 불공정’으로 규정하는 논리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10대의 강박과 만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극우적 사고로 변질됐다. 국민의힘의 이런 태도는 10대들에게 “이기기만 한다면 혐오라도 좋다”는 잘못된 학습 효과를 제공했다.
국민의힘의 모든 정치인이 자라나는 미래 세대의 엇나간 성향을 부추기면서, 그저 투표지 한 장으로 계산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원한다면 학교에서의 정치적 토론부터 보장해야 한다. 발언권을 잃은 교사 앞에서 학생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풍경은 희극이다. 선진국에서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이유는 ‘시민인 교사’만이 ‘시민인 학생’을 길러낼 수 있다는 당연한 생각 때문이다.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한 채 10대의 분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얄팍한 계산은 결국 사회 전체의 민주적 근간을 흔드는 부메랑이 될 것이다.
임아영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