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경기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의 모습. 권도현 기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세계적 수준의 공단을 만들겠다”며 황해도 해주를 부지로 제안했다. 김정일은 해주엔 해군사령부가 있다고 난색을 표하더니 역제안했다. 개성이었다. 그러곤 휴전선 일대 포진한 조선인민군 6사단·64사단·62포병여단 등 6만 병력을 10㎞ 뒤로 물렸다. 개성(開城)이란 지명 뜻대로 성문을 연 셈이다.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 6월 ‘2000만평 규모 공업지구·배후도시 건설’의 1단계로 100만평 개발이 시작됐다. 2004년 12월15일 첫 제품인 ‘통일냄비’가 생산됐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남북 경협의 양날개였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 초병의 총격에 숨져 금강산관광이 중단돼 한쪽 날개가 꺾였다. 개성공단은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면 잠시 문을 닫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반도 평화의 보루’였다. 2005년 18곳이던 입주기업은 2007년 65곳, 2016년 124곳으로 늘었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통해 자본주의 기업과 시장경제를 경험했다. 남한 시민, 북한 인민이 어우러졌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10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했고, 북한은 이튿날 공단을 폐쇄했다. 김정일이 “개성공단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인민군대 군복을 벗겨서 한 30만명을 공장에 넣겠다”던 북한 노동자는 5만4988명에서 멈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2019년 신년사에서 ‘전제조건 없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용의’를 밝혔지만 그해 북·미 하노이 노딜 후 정세가 급변해 물거품이 됐다. 북한은 2020년 6월에는 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해버렸다.
개성공단이 멈춘 지 10일로 만 10년이 됐다. 그사이 개성공단 입주기업 124곳 중 40곳은 휴업·폐업 상태다. 정부는 “개성공단의 조속한 정상화를 희망한다”며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은 남북 사이에 ‘바늘구멍’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은 숙제로 남겨두더라도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이 급하다. 봄은 다가오는데 한반도는 언제까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