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한 새 한 마리 왕궁을 나와, 푸른 산중에 그림자뿐인 외로운 신세. 밤이면 밤마다 잠들 수 없어, 한 해 또 한 해 서글픈 한 끝이 없어라. 새벽 산 남은 달에 애끓는 너의 울음, 봄 골짝에 토한 피가 붉은 꽃 되어 떨어지네. 그 슬픈 하소연을 귀먹은 하늘은 못 듣는데, 시름겨운 이 사람 귀만 어찌 이리도 밝은지.”
단종이 지은 것으로 전하는 ‘자규(子規) 노래’다. 자규는 두견새로, 폐위되어 쫓겨난 촉나라 망제의 혼이 깃들어 불여귀(不如歸), 귀촉도(歸蜀道)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이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에 유배되었을 때 인근의 매죽루에 올라 읊었다는 작품이다.
이후 매죽루는 자규루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도 영월에 가면 자규루를 찾을 수 있는데, 비운의 역사와 함께 사라져 버렸던 터에 다시 자규루를 세운 것은 300년 뒤 정조 때의 일이다. 영월 부사가 촌로들이 말한 자리에 재건하려 하자 소나기가 내려 중단되었고, 그날 밤 원인 모를 화재에 이은 폭풍으로 옛 주춧돌이 드러남으로써 실제의 터를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신이한 이야기가 함께 전한다.
단종은 이곳에 유배되어 지낸 지 넉 달여 만에 숙부 금성대군의 복위 계획이 발각되어 1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당시 단종을 모시던 시녀들이 투신한 곳은 낙화암, 훗날 창렬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삼족을 멸한다는 엄포를 무릅쓰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호장 엄흥도의 이야기도 여러 문헌에 전한다. 야사에는 단종을 모시던 통인이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단종의 죽음을 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근래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엄흥도와 이 통인을 동일 인물로 설정하고 마을 사람들과의 일화를 상상으로 더함으로써 단종의 마지막 서사를 묵직한 감동으로 재현해 냈다.
“너의 울음 구슬프니 내가 듣기 괴롭구나. 너의 울음 없었으면 내 시름도 없을 것을.” 힘없이 쫓겨난 어린 단종은 망제의 화신이라는 자규를 탓하며 자신의 슬픔을 토로하고는, “돌아가리라”라고 절규할 곳마저 허락되지 않는 자규루에서 부르는 노래를 이렇게 맺었다. “이 세상의 모든 괴로운 이들이여, 그대 춘삼월 자규루엔 부디 오르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