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선학교 학생들과 8년째 ‘한글서예’ 교류해온 평화운동가 홍순관
일본 오카야마조선학교 학생들과 교사가 2022년 11월 실습한 한글서예 작품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본인 제공
평화운동가이자 싱어송라이터 홍순관은 2000년대 초중반 공연하러 일본의 여러 조선학교를 찾았다. 한 학교에 갔다가 머릿속에 각인된 건 복도에 걸린 한글서예 작품들이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기념전시를 기획할 때 그 작품들을 떠올렸다. “남북이 함께 사용하는 우리 글자 한글이 곧 통일과 평화를 상징하죠. 그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미래인 아이들의 한글 글씨라고 생각했어요.”
지인들을 통해 서예수업을 하는 조선학교를 수소문했다. 서예수업이 거의 사라졌다는 말만 들었다. 다시 물어물어 찾아낸 곳이 오카야마조선학교다. 일본 내 조선학교 40여곳 중 서예를 정규과목에 넣어 배우는 곳은 오카야마조선학교 단 한 곳이다.
그해 겨울 이 학교를 찾아 서예수업을 참관하고, 교사·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80년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글, 우리말, 우리 얼(정신)을 지키려고 배우고 애써온 오카야마조선학교 학생들의 한글서예는 존재 그대로 우리 역사, 우리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순관은 “우리나라에도 서예 수업이 정규적으로 있는 곳은 이제 찾기가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홍순관씨(왼쪽)가 오카야마조선학교 서예 교사와 함께 학생들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조선학교 복도에서 본 작품 각인
오카야마학교 학생들과 첫 인연
‘글씨는 나, 정신을 쓰는 일’ 강조
3·1절 맞아 학생들 작품전 열어
한글은 시대정신 일깨우는 글자
‘평화예술 박물관’ 지어 꼭 전시
홍순관은 이후 8년째 이 학교와 한글서예 교류를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서예가이기도 하다. 왕희지와 구양순의 대가였던 아버지 의연(毅硯) 홍종욱에게 글씨를 배웠다. 홍순관은 중학교 때 전국 휘호 대회에서 2등을 하기도 했다.
그가 조선학교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강조한 건 서예는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글씨를 쓰는 일이라는 점이다. “‘글씨’는 글의 씨앗 곧, 정신이니 ‘정신을 쓰는 일’이고, 또 ‘글씨는 나다’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말씨도 다르고 마음씨도 다른데 글씨도 사람마다 달라야 자연스럽다고 했죠.” 그는 “이듬해 학교를 다시 방문했을 때 한 아이가 복도 끝에서 ‘글씨는 나다 선생님!’하며 인사를 할 때 울컥했다”고 말했다.
2022년 유치부, 초급부, 중급부 학생 전원(74명)에게 꽤 좋은 붓을 선물한 일도 떠오른다. 교장과 서예 교사가 붓마다 모든 학생 이름을 각각 새겨 나눠줬다. “지금도 중요한 작품을 쓸 때만 꺼내어 쓴다고 했다. 아끼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찡했죠.”
“왕희지의 우아함과 추사의 자유로움”을 즐기던 홍순관은 2010년대 중반 한글서예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글을 가장 품위 있고 섬세하게 표현할 장르는 서예”라고 말했다. 한글을 두고는 “모든 사람이 시대상황과 시대정신을 깨닫게 하려고 만든 글자다. 바로 그 한글을 쓰는 것이 한글서예”라고 했다. “옛날 시구나 격언에 갇히는 것은 서예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일이죠. 시대와 동떨어지거나 남의 글을 흉내 내거나 남의 문장을 그대로 쓰는 것도 서예 정신과 거리가 멀고요.” 그는 “동시대 일이나 통일, 환경, 자본과 빈부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 쓰는 것이 바로 서예의 나아갈 길”이라고도 했다.
홍순관씨는 2019년부터 오카야마조선학교와 한글서예 교류를 해오고 있다. 2025년 10월 교문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홍순관은 1994년부터 10년간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대지의 눈물’ 공연을 진행했다.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운동, 용산참사 현장, 제주 강정마을, 세월호 팽목항 현장을 찾아다녔다. 미국 현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초청으로 시카고, 애틀랜타 등지에서도 공연했다.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과 함께 평화공연도 진행했다. 이 평화운동가 홍순관은 ‘평화예술 박물관’을 직접 짓고 싶어한다. “이곳에 들어갈 전시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한글서예입니다. 남북이 함께 사용하는 우리 글자 한글이 곧, 통일과 평화를 상징하기 때문이죠.”
2019년 이루지 못한 조선학교 학생들의 한글서예 전시는 올해 실현됐다. 홍순관이 대표로 있는 ‘춤추는 평화’와 한빛누리재단은 3·1절 기념 및 평화통일 기원 서예전에 오카야마조선학교 학생들 붓글씨와 연필글씨 작품 60점을 내건다. 서예전 타이틀은 ‘글씨는 나다’. 홍순관도 한글 서예 작품 5점을 출품했다. 장소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인덱스, 기간은 2월24일~3월2일이다. 무료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