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으로 기소된 김건희씨 재판에서 우인성 판사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 보호를 위한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주가조작에 사용된 계좌 주인이 김씨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씨가 시세조종 세력과 통화한 녹취도 있다. 김씨가 실제로 돈을 댔고, 김씨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뒀다. 그럼에도 우 판사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해당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우 판사는 20대 대선 당시 김건희씨가 명태균씨에게 2억7440만원 상당의 무상 여론조사 결과 58건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도 인정하지 않았다. 우 판사는 김씨가 명씨의 여론조사를 배포받는 여러 상대방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이 체결한 계약서 같은, 명씨가 김씨만을 위해 여론조사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누가 뇌물을 주고받으면서 계약서를 쓴단 말인가. 판사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공천 거래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씨와 김영선 전 의원 사건 재판 결과도 황당하다. 김인택 판사는 이들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정치브로커와 정치인 사이에 수천만원이 오가고 그 직후 공천이 이루어졌는데,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렇다면 “김영선을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라고 명씨에게 윤석열이 한 전화 통화는 뭔가. 통화 다음날 국민의힘 공관위는 김 전 의원을 경남 창원 의창 보궐선거에 단수 공천했다. 최근 김 판사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약식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해외여행에 동행한 HDC신라면세점 팀장으로부터 여행 경비를 대납받았다고 한다. 이런 판사가 재판을 진행한 것 자체가 코미디다.
이현복 판사는 구속 기소된 김상민 전 검사가 공천 청탁 대가로 김건희씨에게 고가의 그림을 건넨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김 전 검사를 풀어줬다. 그림이 김씨 오빠인 진우씨에게 전달된 것은 인정하지만, 김씨에게는 전달되지 않고 이른바 ‘배달 사고’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전반적으로 특검 수사가 매우 부실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진우씨 부탁으로 미술품 중개를 알선했다는 김 전 검사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진우씨가 미술 전문가인 여동생을 제쳐놓고 김 전 검사에게 그림을 부탁했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 김 전 검사는 비록 공천에선 탈락했지만 국가정보원 법률특별보좌관이라는 자리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갔다. 무슨 이유인지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김 전 검사에게 빚을 진 것이다. 판사는 ‘합리적 의심’이라는 잣대를 피고인에게도 들이대야 한다.
김건희씨와는 무관한 사건이지만,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대장동 개발업체 화천대유를 그만두면서 받은 50억원이 뇌물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도 이해하기 어렵다. 서민들은 평생 일을 해도 만질 수 없는 거금이 퇴직금 명목으로 곽 전 의원 아들에게 전달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 전 의원은 ‘대장동 50억 클럽’ 일원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오세용 판사는 아들이 성인이고 독립 생계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곽 전 의원 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도대체 어떤 회사가 연봉 4000만원 안팎의 입사 6년차 직원에게 이처럼 막대한 퇴직금을 그저 선의로 주겠는가. 법의 미비로 처벌할 수 없다면 입법 필요성을 제기하는 게 판사로서 책임 있는 자세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은 선거로 뽑는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다. 사법부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그 판결이 주권자인 국민의 도덕이나 정의 관념에 부합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법원 판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법관에 존경을 표할 때 사법부의 권위와 민주주의는 한층 굳건해진다. 그러나 최근 김건희씨 등 권력형 범죄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잇따른 판결은 국민의 건전한 법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로는 부족하다며 무죄 결정을 너무 쉽게 내리고,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법원은 “법 적용에는 권력자든 권력을 잃은 자든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천명했지만, 국민 뇌리엔 아버지 대신 아들이, 여동생 대신 오빠가 뇌물을 받으면 처벌이 어렵다는 사실만 각인됐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103조). ‘800원 횡령 버스기사’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단하면서, 부정한 결탁을 하고 수십억원의 이권을 챙긴 권력자에겐 면죄부를 주는 판사들의 ‘양심’이 궁금하다.
오창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