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언제까지 방기의 공포에 떨 것인가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언제까지 방기의 공포에 떨 것인가

입력 2026.02.12 20:04

케임브리지대학의 헬렌 톰슨 교수가 갈파했듯, 오늘날의 세계는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 에너지와 화폐(금융), 민주정치가 꼬여 만들어낸 구조적 균열 속에 놓여 있다. 과거의 ‘규칙 기반 질서’가 침몰한 자리에는, 강대국이 자신의 의도를 감춘 채 동맹의 양보를 쥐어짜는 ‘모호성 기반 질서’가 들어섰다. 특히 2026년 현재 미국은 한국과 같은 핵심 동맹국을 향해 기분 내키는 대로 금융, 전략, 통상, 기술, 안보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동맹에 극도의 혼란과 불안을 강요하며 흔들어 굴복하게 만드는 일종의 가스라이팅 전략이다. 미국이 구사하는 모호성 전략의 가장 무서운 지점은 그것이 한국 사회 엘리트들의 심리적 저항성을 뿌리부터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금융의 모호성은 이 심리전의 전위 부대다. 미 연준(Fed)은 한국을 ‘준핵심국’에 묶어두고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를 확정 짓지 않은 채 모호하게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는 미국에 거액의 투자를 해야 하는 한국이 언제든 외환위기의 벼랑 끝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공포를 유지해 우리의 외교적 자율성을 제약하는 ‘신용의 목줄’이다. 1997년의 국가 외환위기에서 미국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지원을 받은 우리로서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영역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에 따라 15%에서 25%를 오르내리는 유동적 관세율과 끊임없는 재협상 사이클로 대변되는 통상의 모호성이 더해진다. 미국은 무엇이 불만인지, 정확한 입장을 우리에게 전달하지 않고, 이런저런 불평만 늘어놓으며 한국을 애태운다. 갑자기 종교단체 지도자의 사법처리 문제를 제기한다든지, 쿠팡에 대한 불이익을 통상 문제로 비화시키는 미국 고위 관계자들은 분별력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이러는 동안 정부와 기업은 고장 난 계산기를 두드리며 불확실한 미래의 높은 위험을 추산한다. 작년 조지아주 한국인 기술자 구금 사태를 겪고도 미국은 우리에게 비자 정책을 개선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여전히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전략적 모호성과 핵우산의 모호성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설을 일방적으로 유포해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불안을 자극한다. 박정희 대통령 이래 지난 50여년간 주한미군 문제는 “미국이 우리를 버릴지 모른다”는 방기(Abandonment)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유령이었다. 필자는 트럼프 2기 정권이 들어선 이래 “주한미군 감축”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접하지 않은 날이 거의 없다. 이런 보도가 너무 범람하자 이제 국민 정서는 미군이 감축된다 해도 별로 충격이 아니며, 굳이 말릴 생각도 없다.

핵우산과 확장억제력에 대한 미국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선언은 동맹의 안전을 담보로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는 ‘안보 비즈니스’에 다름 아니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미국은 지금 우리나라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나 원자력 연료 주기를 자주화하는 문제도 확답을 미루고 있다. 지난해 미 백악관이 발표한 팩트시트에서도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과 핵재처리를 “지지한다”고 했지, 문제의 핵심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 역시 알맹이가 없는 모호성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미국에 순치된 한국 엘리트들에게 “미국이 우리를 싫어하거나 오해하지 않을까”라는 강박적 패배주의를 심어주었다.

미국은 우리에게 수천억달러의 대미 투자와 비관세장벽 철폐를 요구하면서도, 동맹을 강화하고 한국의 이익을 존중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도 하지 않는다. 한·미 간의 산적한 문제 해결에도 관심이 없는 미국 정부는 대미 투자 외에는 우리가 뭔 이야기를 한들 듣지 않을 것이다.

이런 미국에 휘둘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 “미국 없는 한국”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라진 자리에 우리는 “중국의 세력권에 흡수된다”는 자해적인 망상도 꿈틀댄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제2의 애치슨 라인”에 대한 공포가 야당 유력 인사의 입에서 나왔다.

미국이 강요하는 심리적 공황을 극복하고 나면 오히려 불안하고 초조한 쪽은 미국이라는 실상이 드러나는데도 말이다. 지지율이 폭락하자 한국에 대한 권력 행사에 조급한 트럼프다. 미국이 사라지면 우리가 힘과 실력을 키워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응해야 한다. 강인한 생존 의지를 다지며 혁신하고 자강을 도모하는 중견국 전략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비전과 포부 없이 현재 국제질서에서 연명이나 하려는 엘리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