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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와 ‘비빌 언덕’ 사이

입력 2026.02.12 20:11

수정 2026.02.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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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개새끼’와 ‘비빌 언덕’ 사이

마크 브래드퍼드 전시장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탄 날, 읽고 있던 책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세스 프라이스라는 현대미술가가 쓴 소설로 한국어 제목은 <세스 프라이스 개새끼>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이 책은 일반적인 소설이라기보다 예술가의 ‘자아’와 ‘미술계 시스템’에 대한 지적인 해부도에 가깝다.

스스로 ‘개새끼’인 이유를 밝히는 일종의 ‘폭로 예술’이라고 할까? 프라이스의 신랄한 언어에 따르면 작가는 그의 취향, 역사, 심지어 고뇌마저도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기 좋게 포장된 ‘상품’일 뿐이다. 그는 미술계가 자신들의 시장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얼마나 난해한 언어로 장벽을 세우는지, 네트워크 중심의 시스템 속에서 작가가 어떻게 주관을 잃고 부속품으로 전락하는지 특유의 지적인 냉소로 파헤친다.

그 책을 느끼며 마크 브래드퍼드 전시장을 돌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프라이스 같은 냉소주의자의 눈에 브래드퍼드의 성공은 어떻게 비칠까? 브래드퍼드는 현재 고가 예술 상품을 만드는 시스템의 정점에 있지만, 제프 쿤스나 데이미언 허스트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그들이 거대 브랜드를 관리하는 최고경영자(CEO)라면, 브래드퍼드는 샌딩 기계를 들고 자신의 노동자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 시스템에 대한 자기만의 인식을 담아 흠잡을 데 없이 우아하고 매끈한 작품을 내놓는다.

심지어 성공의 에너지를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브래드퍼드에게 예술은 시스템을 이용하거나 비웃는 도구가 아니라,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 이런 태도가 구체화된 것이 바로 고향 LA 사우스 센트럴에 설립한 비영리단체 ‘아트+프랙티스’(Art+Practice·A+P)다.

이곳은 미술관이 없는 지역 주민들에게 전시를 열어주고, 위탁가정 청소년들에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무기를 쥐여주는 교육센터 역할을 한다. 그는 이에 대해 “내 작품이 고가에 팔리는 것은 그 돈을 다시 커뮤니티로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스스로를 ‘개새끼’라 칭하는 프라이스라도 이에 대해 냉소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프라이스는 브래드퍼드의 자선활동과 교육사업이 미술 시장에서 그를 ‘더 가치 있는 브랜드’로 만드는 전략적 서사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격 방어를 위한 또 다른 형태의 ‘국제 예술어(IAE)’는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볼 것이다.

그럼에도 브래드퍼드가 갤러리를 넘어 ‘아트+프랙티스’라는 물리적·사회적 네트워크를 직접 설계했다는 점, 예술을 ‘교육과 복지’라는 새로운 경로로 바꾸어 배포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처럼 자아를 해체하는 대신 본인의 역사(흑인, 퀴어, 노동 등)를 동력 삼아 정체성을 지키며 ‘진정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에 대해, 프라이스 역시 지적인 경외감 혹은 의구심을 갖지 않았을까.

나는 프라이스 역시 자본과 결탁한 시스템에 나름대로 혁신적으로 저항하는 지성적인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매우 다른 것 같지만 두 사람은 기질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질이 책임감의 범위를 결정한다고 할까? 냉소적인 관찰자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뜨거운 실천가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를 사랑한다. 그들이 승리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눈치채셨으리라 믿는다.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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