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6월1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고법에서 열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 공판에 시민들이 방청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에 대해 법원이 수사기관의 부실수사 등을 인정하며 국가 배상 판결을 내리자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필명)와 시민사회는 환영 의사를 밝혔다. 김씨는 “살아있으면 된 거 아니냐라는 얘기 때문에 소송을 시작했다”며 “앞으로 나와 같은 피해자들이 소외당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국가 배상 판결 직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 기자회견에 영상 통화로 참여해 “이 소송을 시작하게 된 건 살아있는 피해자면 좀 그냥 잊고 살면 되지 않냐, 살아있으면 된 거 아니냐라는 이야기 때문이었다”며 “이런 말을 살아있는 피해자가 듣는다면 결국에 이 많은 피해자들이 수사에 어떤 미흡함이 있어도 관련해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고 그 점이 계속 반복될 거라는 것, 저는 살아 있지만 문제를 제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들은 이렇게 해서 뭐 하겠느냐라고 하지만 저는 이 앞에만 보는 게 아니라 미래에 피해자분들이 꼭 이 도움이 되는 판례를 쓰고 싶었기 때문에 이 소송을 시작했다”고도 했다.
이 사건의 대리인 단장을 맡은 오지원 변호사(법과 치유)는 “비단 이 사건뿐 아니라 형사 절차에서 피해자 소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피해자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문자 통보는 받고 있지만 사건이나 주요 증거에 대한 설명을 거의 듣지 못한다. 수사 밀행성이라는 이유로 소통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소가 돼도 검사는 공소장 내용을 설명해 주지 않고, 증거나 내용을 알고 싶어도 ‘기록 열람 등사 청구를 하라’고 하지만 검사들이 정작 허용을 해주지 않는다”며 “이런 현실에서 피해자와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면서 정작 피해자의 권리 구제나 권리 보장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알리고 명확하게 하기 위해 피해자분께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변호사는 “너무 다행히도 오늘 일부 승소 판결이 났고, 부실하고 위법한 수사에 대한 어떤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이번 판결은 매우 의미가 깊은 것 같다”고 했다.
대리인으로 참여한 한주현 변호사도 “수사 기관이 성범죄가 강력하게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초동 수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은 위법한 부실 수사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면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는 수사가 한창 진행될 때는 그저 사건에서의 충격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수사가 잘 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며 “수사기관은 피해자에게 성범죄 정황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고 막연한 질문만 했다. 1심 형사재판에서야 처음 자신이 성범죄를 당했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된 피해자는 가해자가 성범죄를 목적으로 자신을 폭행한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법원과 검찰에 알렸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그러나 그런 피해자의 목소리에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고, 부실했던 수사는 그대로 1심 재판의 한계로 이어졌다. 이 사건 1심은 그저 단순 살인미수 사건으로 끝나 가해자는 고작 징역 12년을 선고받으면서 끝났다”며 “1심 선고 후 피해자가 생업까지 포기하면서 진실을 밝혀달라고 촉구했고, 항소심 재판 중 아주 이례적으로 DNA 감정이 다시 이뤄져 결국 가해자에 대한 법적 평가도 바뀌어서 가해자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됐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가 나서지 않았다면 가해자의 강간 목적이 밝혀졌을지, 가해자에게 징역 20년이 선고될 수 있었을지, 범죄의 실체는 피해자가 나서야만 밝혀지는 것인지,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수사 절차에서 아무런 정보를 듣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통해 국가가 앞장서서 피해자 중심적인 수사 체계와 구조를 확립해 나가기 위한 고민을 해 주기를 바란다”며 “부실 수사는 단순히 한 개인 수사관의 역량이나 자질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관들이 사건 하나하나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피해자와 더 많이 소통하며 실체 진실을 규명해 나갈 수 있는 수사 시스템을 세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