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왼쪽)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
법원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이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하면서 12·3 불법계엄이 내란에 해당한다는 법적 판단을 재차 내놨다. 계엄 선포를 사전에 모의하고, 포고령 발표 이후 실제 군인과 경찰들을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투입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는 설 연휴 직후인 오는 19일 나온다. 앞서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특검)이 구형한 대로 윤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게 될까.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의 내란 1심 판결문을 분석해 형법상 내란죄에 대해 사법부가 어떻게 판단했는지 짚어봤다.
이상민 “지시 없었다” 주장에도 법원 “피고인 말 안 맞아” 지적
지난해 10월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 심리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재판에서 12·3 불법계엄 당일 대통령실 CCTV 영상이 공개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류경진)는 지난 12일 이 전 장관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하며 “내란의 위험성은 국가 전체에 미친다. 피고인을 비롯한 윤석열,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등의 행위는 국가기관의 권능 행사와 기능을 마비시키려 하는 것이므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은 2024년 12월3일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경향신문 등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를 지시받고, 허석곤 전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이런 내용을 실제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계엄 당일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이 전 장관이 양복 재킷 안주머니에서 문건을 꺼내 읽는 모습, 한 전 총리와 약 10분간 문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등이 드러났는데도 이 전 장관은 줄곧 혐의를 부인했다. 특정 언론사 이름이 적힌 문건을 받은 적도, 단전·단수 지시를 받은 적도 없고, 소방청에는 상황을 대비하고 파악하기 위해 전화한 것이지 단전·단수 지시를 내린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관련 지시 문건의 존재부터 인정하며 “김용현이 윤석열의 지시로 만든 문건들의 교부 대상은 국무총리, 행안부 장관, 외교부 장관, 기획재정부 장관, 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 등이었다”며 “실제로 피고인을 제외한 한덕수, 조태열, 최상목, 조지호, 김봉식은 윤석열을 대면한 자리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들으며 특정 문건들을 교부받았다. 피고인에게만 교부되지 않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 스스로도 본인이 세차례에 걸쳐 상의 안주머니에서 꺼내 펼쳐 보고 한덕수와 손으로 짚어가며 협의한 문건이 정확히 무엇인지 특정하지 못하고, 해당 문건이 당일 울산에서 열린 김장 행사 등 자료일 것이라는 가능성만 제기하고 있다”며 “CCTV상 확인되는 문건과 김장 행사 브로셔와는 크기와 색상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또 허 전 소방청장에게 전화했을 때 단순히 ‘안전에 유의하라’고 지시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여러 증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전화 내용은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에 대한 협조 지시였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허석곤은 피고인과의 통화에서 ‘언론사에 경찰이 투입됐을 때 발생할 안전사고나 인명사상에 대한 주의, 안전조치에 대한 지시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이 국회와 선관위를 봉쇄하려 군·경을 투입한 상황에서 이 전 장관이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를 지시한 행위가 내란의 중요 임무에 가담한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재판부는 “윤석열, 김용현 등의 내란 집단의 계획에 따라 특정 언론사에 대해 경찰이 투입되고, 피고인 지시대로 단전·단수가 이뤄진다면 헌법상 보장하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저해될 것임은 자명하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은 윤석열 등과 계엄을 사전 모의한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적어도 당일 오후 8시36분 대통령실에 도착한 이후에는 계엄 선포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단전·단수 조치 문건과 지시를 받았다”며 “계엄 선포와 이에 따른 후속행위에 위헌·위법적인 요소가 있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민보다 한덕수 중형 선고 이유는 “국무총리 위상과 책임” 차이
서울법원종합청사. 정효진 기자
법원은 이번에 이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이나 김 전 장관이 구체적으로 계획한 개별적 폭동 행위 전부에 대해 관여하지는 않고, 실제 단전·단수 조치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관련 조치를 지시한 것만으로 내란 중요임무 종사에 해당한다고도 봤다. 결과가 발생하지는 않았더라도 내란 행위에 가담했다는 것은 유죄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죄목으로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한 전 국무총리에 비하면 형량에서는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앞서 같은 법원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는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하며, 특검이 구형한 징역 15년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했다.
이는 계엄 선포 당시 국무총리와 장관의 위치에 따른 책임의 차이로 보인다. 두 재판부는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이 모두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적극 만류하지 않고, 진실을 은폐하고 위증했으며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파괴하려 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다만 한 전 총리에 대해 법원은 국무총리의 헌법적 위상과 국무회의 소집·운영에 관한 독자적인 책임이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 이진관 재판장은 한 전 총리에 대해 국무총리로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부작위’에 대해 위헌·위법성이 크다고 했다. 이 재판장은 “국무총리는 간접적으로나마 민주적 정당성과 그에 합당한 책임을 부여받아 대통령과 다름없이 헌법 및 법률 준수 의무를 부담하고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또 “국무총리는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의장인 대통령을 보좌해 국무회의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발언과 토론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거나 조정할 수 있도록 국무회의를 운영해야 하고, 그 전제로 모든 국무회의 구성원에게 빠짐없이 소집을 통지해야 한다”고 했다. 계엄 전 국무회의 때 임의로 몇몇 국무위원들에게만 연락한 것이 내란을 방조하고 가담했다는 취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월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결심공판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이에 따라 한 전 총리는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전국에 비상계엄 조치를 확대한 전두환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노태우 전 대통령의 1심 징역 22년6개월보다도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전두환씨에 이은 2인자로, 이번 사태에서 한 전 총리가 ‘국정 운영 2인자’의 자리에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류경진 재판장이 이 전 장관에게 내린 형량은 전두환·노태우 외 내란 모의 참여자들이 확정받은 형량과 유사하다. ‘신군부 중요인물 5인’이었던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7~8년형이 확정됐다.
이처럼 법원이 계엄 선포 사태에 대해 두 번째로 위헌·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형법상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보면서 오는 19일 내려진 윤 전 대통령 선고 결과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 그와 가장 긴밀하게 소통하며 계엄을 사전에 모의한 김 전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특검은 이들에게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불법한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국회를 포함한 국가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고, 그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것으로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했다”는 법원 판단이 윤 전 대통령에게도 이어질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