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정치시민넷’, 전북 14개 시·군 절반 이상 ‘소멸 위험’···전주마저 하락세 뚜렷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 국내 통계. 좋은정치시민넷 제공
“애 울음소리 끊긴 지는 벌써 십수 년 됐고, 이제는 앞집 할매 곡소리 들릴까 봐 겁나요. 젊은 사람들은 명절에나 얼굴 비추지, 누가 여기서 살겠어요. 다들 서울·경기로 가야 사람답게 산다고 생각하죠.”
전북 임실군에서 평생을 살아온 박모씨(77)의 말이다. 한 마을의 일상을 설명한 그의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었다. 출생보다 사망이 많아지고 학교와 상점이 문을 닫는 변화가 전북 곳곳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좋은정치시민넷이 14일 통계청 ‘2025년 주민등록인구 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지방소멸위험지수를 보면 전북도의 지수는 35.0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14위였다. ‘경계’ 단계지만 전년보다 2.6포인트 하락해 소멸 위험이 빠르게 심화하는 흐름을 보였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와 비교해 산출하는 지표로 지역의 인구 재생산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로 꼽힌다.
특히 전북 인구의 버팀목으로 여겨지던 전주시(58.5)가 1년 사이 5.6포인트 하락해 ‘관리’ 단계로 내려간 점은 상징적이다. 인구 유출이 더 이상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익산시(37.7)를 비롯해 군산·정읍·김제시와 완주군도 ‘경계’ 단계에 머물렀다.
전북 14개 시·군 가운데 남원·진안·무주·장수·임실·순창·고창·부안 등 8곳은 이미 ‘위험’ 단계(10~20 미만)에 진입했다. 이 가운데 임실군(12.2)은 도내 최저 수준으로 사실상 ‘심각’ 단계 문턱까지 내려왔다. 농촌 지역에서는 학생 감소로 학교 통폐합이 이어지고 병원·상점·대중교통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인구 감소가 서비스 축소를 낳고 서비스 축소가 다시 인구 유출을 부르는 구조다.
정부는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매년 약 1조원을 투입하고 있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낮다.
익산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 이민오씨(24)는 “정착 지원금을 준다고 해도 일할 만한 기업이 없다”며 “친구 10명 중 8명은 이미 수도권으로 갔거나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층 유출이 이어지면서 지역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고 있다.
손문선 좋은정치시민넷 대표는 “현재 정책은 막힌 하수구에 물을 더 붓는 것과 같다”며 “재정 지원만으로는 인구 유출이라는 구조적 흐름을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소멸의 원인을 단순한 재정 부족이 아니라 수도권 중심의 국가 균형발전 전략 실패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긍정적 변화도 나타난다. 김제시와 완주군 등 5개 시·군에서는 지방소멸위험지수의 핵심 지표인 20~39세 여성 인구가 소폭 증가했다. 귀농·귀촌 정책과 청년 유입 정책의 제한적 효과로 풀이된다. 다만 지역 내 일자리와 교육·의료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가 장기적인 인구 반전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더욱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한 규제 강화, 지방 기업 세제 지원 확대, 공공기관 2차 이전, 생활권을 집약하는 ‘콤팩트 시티(압축도시)’ 전략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단순히 인구수를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생활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 구조를 만드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지방소멸은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균형발전 의지의 문제”라며 “주민등록 인구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실제 체류와 활동을 반영하는 ‘생활인구’ 개념을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